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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7. 09일 청와대 두번째 관람

소담1 2022. 7. 23. 12:08

관람장소 : 청와대

관람일자 : 2022년 7월 9일 토요일

관람인원 : 인천솔길산악회 37명과 함께

관람경로 : 청와대정문-영빈관-청와대본관-수궁터-관저-상춘재-녹지원-정문-경복궁역.

관람시간 ; 11:30~ 13:30(2시간)

 

청와대(靑瓦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위치한다. 청와대 ‘푸를 청(靑)’에 ‘기와 와(瓦)’,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곳이다.  2022년 5월 10일을 기점으로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개방되었다.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접견실·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비서실 및 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로 불려오다가, 그 해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御營: 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으로서, 또는 친경(親耕)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 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후 1927년 일제에 의하여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 J. R.)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하였다. 이승만(재임 1948∼1960) 대통령은 6·25전쟁의 피난시절을 제외하고 1960년 4월까지 초대·2대·3대 대통령으로 보낸 1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혁명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겼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대통령 부정선거 등 독재와 비정(秕政)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1960년 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지난달 6월6일 남편과 청와대를 다녀 북악산 새로개방된 청와대전망대 까지 다녀왔는대 오늘 산악회회원 40명을 남편이 예약하고 인솔하기 위해 함께 출발하는 날이다. 12시 예약으로 부평역에서 일부인원이 모이고 일부인원은 먼저 출발하여 청와대 전망대를 다녀 내려와 영빈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을 한다. 한번 다녀온 길이라 망설임 없이 영빈문앞에 도착하여 전망대를 다녀 내려온 인원들과 만나 영빈문으로 입장을 하려 하니 단체 입장은 청와대 정문에서만 한다고 해  영빈문에서 약 250m정도 걸어 정문에 도착하여 무사히 40명이 다 입장을 하고 많은 인원이라 경내에서는 인솔을 못하니 각자 관람을 하라고 하고 우리 몇명은 따로 관람을 한다. 지난번 새벽에 잠시내린비로 내부관람을 하지 못하고 갔었는대 오늘은 내부관람이 허용되 내부는 관람을 하고 지난번 다녀온 오윤정과 미남불은 생략하기로 하고 관람을 시작한다.

 

청와대 관람은 청와대 개방 홈페이지나 네이버, 카카오톡, 토스 앱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하루 관람 인원은 총 3만 9000명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단위로 구분해 단위별로 6500명씩 받는다. 관람 8일 전 당첨자에 한해 안내 연락이 온다. 청와대 관람자를 위한 주차장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민들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를 나와 경복궁 담을따라 15분정도 걸어가면 영빈문앞에 도착할수있고 셔틀버스도 운행하거 있으나 긴줄이 서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경복궁역 3번출구 앞 정류장에서 1711번, 1020번, 7018번, 7016번, 7022번, 7212번 버스를 타고 효자동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가깝다. 경복궁역에 내리면 곳곳에 청와대 가는길 입간판이 서있다.

 

4번출구를 나와 나온문을 좌측으로 끼고돌면 종합청사와 광화문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 담을 따라 정확히 15분가면 청와대 분수와 영빈문앞에 도착할수있다.

 

경복궁 담장길.

 

경복궁 4번 출구로 나와 효자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와대 사랑채 앞에 있는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시민들을 반겨준다. 최근 청와대를 다녀온날은 비로인해 본관및 영빈관 내부관람을 못하고 갔었는대 오늘 산악회원 40명과 왔는대 내부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복궁 신무문.

 

입장하는문은 3군데 있다. 영빈문, 청와대정문 그리고 춘추관 단체관람은 정문에서만 가능ㄹ하다.

 

정문으로 들어서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 1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에 준공이 되었다.이 곳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며, 외국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문했을 때 우리 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고,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2층까지 뻗어 있는 높이가 13m에 둘레가 3m인 기둥이며 내부는 무궁화·월계수·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영빈관을 돌아보고 본관으로 가는 문을 지난다.

 

본관 집무실과 충무식 인왕실등을 보기위해 긴줄이 서있다.

 

청와대 본관전경.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할 때 중심이 된 산이 북악산北岳山이다. 조선왕조는 북쪽의 북악산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짓고, 서쪽에 인왕산(339.9m), 동쪽에 낙산(125m), 남쪽에 남산(262m)으로 네 개의 산을 연결해 한양도성을 쌓고 동서남북으로 4대문을 세웠다. 배산임수이고 사신사四神砂를 갖춘 복지로서 당대 최고의 풍수가들이 선정한 입지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며, 1989년 22명의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많은 의견을 수렴한 뒤 1991년 9월 4일 신축되었다. 이 본관 건물 신축으로 외국의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을 통해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 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약 30만 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통령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청와대 대정원(운동장)

 

현관앞에 다다른다.

 

 

현관 양쪽으로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청와대는 조선총독부 관저가 과거 근처에 있긴 했으나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대부분 재건축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조선총독 관저와 청사 등이 철거됐다고 전했다. 일본의 잔재를 철거한지 27년이 된 셈. 또 그는 청와대는 900년 전부터 인증된 명당이라며 ‘천하제일복지(천하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적힌 표석이 박힌 돌이 발견됐다고 언급, 조선 중기 때 새겨진 걸로 추정됐다.

 

청와대 내부로 들어서서.

 

중앙통로 현관.

충무실은 임명장 수여, 만찬,공연등 다목적장소

 

(인왕실) 간담회,오찬,만찬 장소

 

청와대 중앙복도.

 

대통령 집무실 책상.

 

집무실 회의탁자.

 

집무실 전체모습.

 

접견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역대 영부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영부인의 집무실인 무궁화관에는 역대 영부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영부인은 프란체스카로, 오스트라이 출신 외국인이라는 점이 눈에 띄였다.

 

본관앞에 서서.

 

관람객은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는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본관도 둘러볼 수 있다. 청와대의 상징과 같은 본관은 15만장에 이르는 한식 청기와를 이어 팔작지붕을 올린 외관으로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적용한 건물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는다는 불노문에서.

 

수궁(守宮)터인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890년 전인 고려시대에 이곳에는 남경의 이궁이 있었다.그러다가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 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으며, 그 뒤 1868년(고종 5)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융무당·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농사가·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이곳은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청와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되었는데,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하게 된 것이다.철거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시킨 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 하여 지금은 수궁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수궁(守宮)’은 경복궁 후원, 즉 지금의 청와대터를 지키는 군사(금위군)들을 위한 건물이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다른 건물과 함께 훼철되었고, 조선총독부가 이곳에 총독관저를 지었다.(1939년)

아래 사진은 절병통구 구 청와대터 본관에서 유일하게 남은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박근혜 전 대통령 기념식수.

 

수령 700년이 넘은 주목나무.

 

관사로 올라가는 입구에있는 문.

 

관사 담.

 

관사앞 인수문.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었는데 형태는 전통한식(본채는 八作지붕의 겹처마에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이며 구성은 본채·별채·대문채·사랑채·회랑으로 되어 있다.

 

관사전경(그전에 왔을때 뒷쪽도  다 둘러봐 전경만 담아왔다)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 표지석이 이곳에 있다.

 

대통령 휘장문앞

 

침류각입구 기이한 향나무.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된 한식 가옥으로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했다. 2017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부부도 이곳에 왔었다.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우리 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던 차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하여 전통 한식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던 것이다.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연혁을 보면 현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관사로 건축된 일식 목조건물인 상춘실(약 20평)이 있었으나 1977년 12월에 철거하고, 이듬해 3월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약 22평)로 개축하여 상춘재(常春齋)라 명명하였다.그 뒤 전통한식집을 형태 변경 없이 목재로 보수하는 공사를 1982년 11월 20일 착공하여 온돌방 1개와 대청마루가 있는 연건평 116평의 건물을 1983년 4월 5일 완공하였다.

 

녹지원(綠地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에 약 1,000여 평의 평지에 잔디를 심어 야외 행사장으로 이용했다.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1995년 5월 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000여 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또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310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연혁을 보면 옛 경복궁의 후원으로 채소밭·가축사육장·온실 등의 부지였으며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는데 국내외 귀빈 및 외교사절단을 위한 야외 행사장,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고의 정원 녹지원에서.

 

약 1,000평의 녹지원은 말 그대로 초록의 잔디가 한여름을 시원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172년 된 둥근 모양의 아름다운 반송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녹지원(綠芝園)은 국내외 귀빈 및 외교사절단을 위한 야외 행사장으로 사용한 공간이다. 120여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를 심어둔 곳으로도 유명하다. 녹지원의 상징이자 수령 150여년에 높이 16m의 한국산 반송(소나무)도 볼 수 있다.

 

녹지원.

 

정문을 나오며 바라본 청와대 본관.

 

청와대앞 분수대와 인왕산.

 

청와대 사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