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2022.06.06일 청와대 관람

소담1 2022. 6. 12. 20:47

관람장소 : 청와대(靑瓦臺)

관람일자 : 2022년 6월 6일 월요일

관람인원 : 남편과 지인2명과 함께

관람경로 : 경복궁역4번출구-경복궁담장길-영빈관-청와대본관-수궁터-대통령관저-오윤정-미남불- 침류각-상춘재-녹지원-

                  여민관앞-청와대정문(신무문)-분수대-칠궁-청와대전망대-춘추관-안국역

관람시간 : 11 : 00 ~ 13 : 00 (청와대)  13 : 00 ~ 14 : 00 (청와대전망대 산행)

 

청와대(靑瓦臺)

청와대(靑瓦臺)는 과거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되었던 시설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세종로)에 위치한다.윤석열 정부에서 청와대를 민간에 개방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 전, 문재인 정부 시대까지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이 그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집무실과 퇴근 후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가진 대통령궁(大統領宮)이자, 나아가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 및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구 대통령부(大統領府)를 의미했다. 이에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을 줄여서 '청와대', '청(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집무실이 이전된 이후에는 이러한 고유명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대신에 기능적 명칭인 '대통령실(大統領室)'이 사용되고 있다.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구 조선총독 관저를 이양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로, 조선 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익숙한 현재의 본관을 신축하였다.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청와대에 근무하는 인원들은 국가원수를 보좌하고 명을 받아 행정부의 장관과 차관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하고 행정부로 돌아오는 경우에는 청와대 근무자, 정치인들과 친분이 형성되고 능력이 있으니까 청와대로 파견 간다는 인식도 있어서 청와대 파견 근무 자체가 경력이 되어 복귀 후 행정부 내에서 입지가 강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권부(權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은은 취임 이전부터 대통령 집무실 및 비서실을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심이 확고하여 문재인 전 대통령도 퇴임 전날인 2022년 5월 9일 청와대를 미리 떠나기로 한 것에 따라 2022년 5월 10일 0시를 기해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 기능이 해제됐다.2022년 5월 10일 오전 11시 38분, 74년 만에 74명의 시민들이 청와대에 입장하는 것으로 청와대는 완전히 개방되었다.

 

몇일전부터 남편은 청와대가 개방이됬는대 하며 컴퓨터를 보며 다른사람들 다녀온 후기글을 열심히 읽던이 되던 안되던 관람신청을 했다고 한다. 6월11일부터 관람은 선착순으로 발표를 한다고 하는대 아직까지는 추첨으로 이루어 진다고 한다. 6월6일 현충일 휴일인대 운에 맞기고 신청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5월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에 직무실을 마련해 그리로 가고 지금의 청와대는 취임식과 함께 국민에게 전면 개방을 하였다. 토요일아침 핸드폰 문자를 보던이 추첨이되 갈수있다고 신나한다. 4명을 신청했는대 우리가 원하는날자와 시간에 70,000명이나 신청되있고 그중 6,500명이 추첨되 10:1의 경쟁이였는대 당첨이되 출발하는 날이다. 오전11시 입장이라 9시 전철역에 나가 1호선 종로3가역에서 환승하고 경복궁역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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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에 내리면 큼지막한 청와대 가는길 방향 입간판들이 4번출구로 나가라고 여기저기 서서 안내를 해준다. 4번출구를 나오자 100m도 넘는 길줄이 서있다.이줄은 청와대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줄이다. 우리는 걸어서 가기로 하고 정부종합청사와 광화문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 새벽비가 조금내려 맑고 쾌청하지만 아직 화창하게 햇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을 보니 점점 구름이 거쳐지고 있다. 담장길을 따라 15분만 가면 된다고 하는대 시계를 보고 출발하여 좌측으로 청와대 사랑채건물과 효자삼거리에 있는 청와대앞 분수대를 보며 정확히 15분만에 입장안내소가 있는 영빈문앞네 도착을 한다.

 

경복궁 담장길.

영빈문앞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관람인파로 인산인해다. 11시 입장인데 10시30분에 도착했다. 하지만 시간에 관계없이 도착 순서대로 핸드폰에 도착되있는 문자 바코드를 보여주고 안내요원의 확인후 입장을 한다. 뉴스시간 간간히 봐왔던 영빈관앞 넓은 광장을 지나 영빈관 앞으로 다가간다. 영빈관은 대규모회의와 외국 국빈을 위한 공식 행사가 열렸던 건물이다.2층 석조건물앞에서 사진을 찍고 입구문으로 다가가니 오늘은 내부관람이 안된다고 한다. 새벽 비가 조금왔는대 양탄자및 기타 시설이 더럽혀 질까봐 오후에나 내부관람이 가능할거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유리 출입문 안쪽의 건물내부 대통령휘장과 데이블만 조금 들여다 보고 청와대 본관으로 가기위해 반달형 아치문을 통과하여 본관으로 향한다.

 

영빈관​

1978년 12월 준공된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건물로, 대규모 회의와 외국의 국빈들을 맞이하는 장소다. 민속공연이나 만찬, 연회, 회의 등을 하는 곳. 석조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이곳이 준공되기 이전까지 소규모 국빈 접객은 청와대 본관에서 이루어졌으며, 대규모 접객은 서울신라호텔의 영빈관에서 이루어졌다.1970년 이후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은 증가하였지만 청와대 내에 만찬이나 연회 등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땅치 않아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또 국가 위상과도 걸맞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도 자주 열리게 되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청와대 내에 대규모 행사장을 갖춘 지금의 영빈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영빈관에 국빈이 묵을 숙소가 없어 국빈은 환영행사 후 시내 호텔로 이동한다.겉모습은 경복궁 경회루를 닮았다. 정작 내부는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건축 양식을 따라 부조화라는 지적이 존재한다. 퇴임한  문재인정부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직 퇴임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국빈행사장과 의전 행사장소를 둘러봤지만, 고백하건대 우리나라의 청와대 영빈관이 최악이다", "구민회관보다 못한 시설", "어떤 상징도 역사도 스토리텔링도 없다" 고 혹평했다. 이에 실내를 설계한 유희준 한양대 교수는 "탁 전 행정관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영빈관을 재설계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이 있고, 다시 봐도 스스로 감탄했다.’고 말했다.

 

영빈관은 1978년 완공된 건물로 1층은 일반행사 2충은 연회장으로 쓰였고 18개의 돌기둥이 건물전체를 떠 받들고있는 형태로 사용된 석재는 전북익산의 황등석이라고 한다. 사용해 오다가 건물이 노후되 1998년10월부터 리모델링해 2000년6월 새로 단장후 지금에 이렀다고 한다.

 

본관으로 가는 아치문을 통과한다.

청와대 본관 대정원앞에서.

청와대 본관과 좌측세종실과 우측 충무실전경.

청와대 본관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무궁화실, 인왕실이 있고, 1층 별채에는 충무실, 세종실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백악실, 집현실이 있다. 본관 앞에는 엄청나게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데, 대통령이 참석하는 야외 행사에 주로 사용된다. 국빈 환영식이 대부분 여기서 진행된다.본관이 완공된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본관과 비서실이 위치한 여민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대통령과 비서관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청와대 본관을 리모델링해서 대통령 비서관들을 입주시키거나 본관 옆에 비서동을 새로 만들자는 안이 제출 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전직 대통령 비서관들의 말에 따르면 여민관에서 본관으로 가는데 차로 5분, 걸어서 최소 10분이 걸린다고 하며, 같은 청와대 경내임에도 불구하고 검색대를 따로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건물 안에서 대통령 비서관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백악관과는 천양지차.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여민관 문단으로. 결국 본관 집무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며 여민관 간이 집무실이 주 집무실이 되면서 국무회의 및 귀빈 방문 시에만 사용하는 보조 집무실이 되고 말았다.옛 궁궐 양식에 대입해 보면, 전면 9칸에 지붕 처마 끝에는 잡상이 11개가 올려져 있다. 황제의 격에 맞는 건축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은 전면 5칸에 처마에는 잡상 9개를 올렸다.

 

청와대 본관앞에서.

그리고 곧 TV뉴스시간에 자주보았던 청와대 본관으로 가기위해 잔디운동장 대정원앞에 도착을 하여 본관을  사진에 담고 긴줄을 기다리며 뒤돌아보니 오래전 경복궁에 왔다 신무문에서 본관을 바라다 보고갔던 신무문이 보인다.길줄은 빨리 줄어든다. 느릿느릿하지만 계속 이동하는 인파들속에서 청와대 출입문앞 현관에도착을 한다. 신기하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이곳에 출입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는대 청기와 한장한장이 신기하고 대운동장도 현관앞 건물의 색깔도 신기하고 하지만 본관역시도 오전에는 관람이 불가하다고 한다. 집무실도 회의실도 보고싶었는대 아쉬운 마음으로 문틈사이로라도 조금 보이려나 들여다 보지만 붉은 양탄자만 조금 어른거린다.

 

청와대 현관앞에서.

청와대는 1948년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역대대통령들의 집무실과 관저로 이용됬고 초대 이승만대통령 때는 경무대로 불렸고 윤보선 대통령때 지붕이 청기와여서 청와대로 개칭됬다고 하며 경무대는 조선총독부 관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1991년 노태우 대통령시절 본관건물을 새로 지어 집무실을 옮겼다. 청와대의 면적은 25만 제곱메터(약 76,000평)이며 본관및 세종실과 충무실의2개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청와대에 대한 설명 표지석이 서있다. 그내용인즉 청와대의 이 터전은 고구려의 이궁으로 조선조 경복궁의 후원으로 천년에 걸친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일제가 우리의 옛 건물들을 헐고 이 곳에 지은 총독의 집을 국가원수가 건국 이후 이제껏 써왔다.노태우대통령은 1988년 12월 27일 민족문화의 전통을 잇고 드높아진 나라의 위상에 어울리는 청와대를 신축토록 하였다.관저가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고 본관이 1991년 9월 4일 준공되니 천하에 으뜸가는 복지위에 겨레의 앞날을 무한히 밝혀 줄 청와대가 새로 지어졌다. 

 

본관앞에서 바라본 대정원과 서울중심가.

청와대 지붕은 15만 여장의 전통적인 청기와로 덮혀있는대 도자기를 굽듯 하나하나 정성껏 구어낸것으로 100년이상 견딜수 있다고 한다. 날이 맑아지며 본관앞 대정원으로 불리우는 넓은 운동장 잔디밭과 서울중심가 빌딩들이 맑게 보이기 시작을 한다. 본관역시도 오전에는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다고해 아쉬운 마음으로 긴줄을 따라 한바퀴돌아 수궁터가 있는곳으로 가기위해 금색이 칠해진 문 하나를 다시 통과하여 소공원앞을 지난다.

 

본관에서 수궁터로 가기위해 이문을 지나야 한다.

이 불로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는다고 한다.

수궁터가는 길목에는 "不老門"이 서있다. 이 아래를 통과하면 늙지않는다고 한다. 그문앞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수궁터앞 넓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는 간이 화장실 컨테이너와 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다. 守宮이란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곳을 뜻하난 곳으로 이 일대를 옛날 경무대가 있던곳으로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청와대 본관이 새로 건축되며 철거를 했다. 경무대가 있던곳에는 청와대 구본관터 표지석 "天下第一福地"글씨와 본관 사진 그리고 자세한 설명판이 붙어있다. 이곳에서 물한잔 마시고 나무밑을 바라보니 석재로 만든 병모양의 절병통이 있다. 1983년 구 본관 남쪽 현관을 지으며 현관 지붕에 올렸던 장식인데 1993년 경무대 철거당시 구 본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수궁터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던 곳.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여기를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지었다. 이 총독 관사를 그대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한 것이 청와대의 시작이다. 새 본관과 관저가 완공된 뒤, 구 본관은 1993년 철거되었고 그 터를 옛 지형대로 복원하여 수궁터로 부르고 있다.

 

그앞을 지나며 박근혜 대통령 당시 기념식수한 소나무와 박근혜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을 바라보고 75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오래된 주목나무앞에 선다. 고려시대때부터 있었던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한다. 그앞을 지나 관저로 가는길에 오르막길 입구 무슨용도의 건물인지 2층건물을 지나 관사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도착을 한다.

 

청와대 옛 본관자리(경무대)였던 수궁터에 있던 주목나무 수령이 743년이란다.

관사 입구에는 역시 문하나가 만들어져 있고 이문을 통과하여 언덕길을 올라가다 관저를 짓기위해 쌓아만든 축대와 담장 그리고 큼지막한 굴뚝을 지나올라 관저의 대문 仁壽門 앞에 도착을 한다.

 

인수문앞 작은 로타리형 잔디밭과 소나무 몇그루가 심어져 있다. 소나무 밑에는 노태우대통령 내외분 기념식수1990.10.25 표지석과 노무현대통령 권양숙여사 기념식수 2003.4.5 표지석이 있다 잘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한바퀴돌고 긴줄이 서있는 관저 관람객뒤에 줄서있다 인수문을 들어서 관저앞 마당으로 들어선다.

 

 

청와대 관저​

1990년 10월 25일완공된 전통 한옥 양식의 건물.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생활 공간인 본채(내실), 접견 공간인 별채(외실),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는 구 본관 2층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박근혜 정부 시절, 내실은 침실, 서재, 피트니스 룸, 소식당, 한실, 파우더 룸으로 구성되었으며 박근혜와 윤전추, 김막업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외실에는 경호실,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는 1990년10월25일 완공된 대통령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전통한옥건물로 만들어진 큰 기와집이다.마당 끄트머리에는 관저의 사랑채격인 청안당이 서있다. 긴줄을 따라 관저 뒤로 한바퀴돌며 드레스실 서재 침실 식당등의 표지판이 붙어 있는 뒤로 아주 조금씩 창문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내부를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본채를 돌고 별채(접견행사장)뒤까지 돌고 인수문을 나선다.

 

청와대 본채 출입문.

관저의 사랑채 청안당

사저 별채.

인수문을 나서 작은연못 앞으로 다가가 행운을 빌며 작은 돌위에 동전을 던져진 모습과 잉어를 보며 오운정과 미남불을 보기위해 데크계단길을 따라 올라 산길을 조금 걸어가며 광화문과 서울의 중심가가 잠시 보이고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위해 지었다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2호인 五雲亭에 도착을 한다.

 

깨끗한 닐씨에 서울의 빌딩숲이 아름답게 보인다.

오색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곳과 같다는 의미를 나타낸 작고 단아한 정자앞에 도착을 한다.원래 위치는 아랫쪽 이였으나 1989년 관저를 신축할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정자를 한바퀴 돌고 바로 근처에 있는 미남불을 보려고 산길을 따라 이동하다 사저지붕 아래로 서울의 중심지와 남산 관악산등의 풍경을 바라보고 미남불앞에 도착을 한다.

 

오운정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후원인 경무대 만들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910년대 이전까지 이곳은 창덕궁 후원처럼 수려한 계곡과 정원이 있었다. 경무대에는 32개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오운각(五雲閣)은 임금 휴식처, 융문당(隆文堂)은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이고, 융무당(隆武堂)은 군사를 조련하는 장소였다. 오운정은 청와대에서 유일한 정자다.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글씨다. 관저 자리에 있던 정자를 관저를 신축하며 현재 자리로 옮겼다.

 

대통령 관저 뒤편에는 통일신라 불상이 있는데, 흔히 '청와대 불상', '미남 불상', '미남 석불' 등의 별칭으로 불린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4월 20일에 '경주 방향대좌 석조여래 좌상'이란 정식 명칭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977호에 지정되었다. 경주에 있던 불상이 청와대에 있는 이유는 일제가 약탈해서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에 둔 것을 광복 이후 그대로 있었던 것이고, 경주로 돌려줘야 한다는 운동이 꾸준이 있다. 원래 위치는 경주 이거사라는 절이라고 한다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제작돼 경주 남산 계곡에 있던 불상이다. 이를 일제 때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서울 남산 총독 관사인 왜성대로 가져갔다. 1939년 총독 관사를 현재 청와대 자리에 만들며 함께 옮겼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몸체가 온전하고 연꽃문양을 새긴 대좌까지 남아있는 통일신라 석불은 많지 않다. 기독교 장로 대통령 시절에 불상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불상을 치워버렸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일부 신도들이 성모상과 예수상을 함께 들여놓으라는 요구도 했다.

 

편안하고 조망좋은 산길을 걸어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일명 미남불)앞에 선다. 녹색의 너무잎과 새벽에 내린비로 깨끗해진 공기를 마시며 신비의 청와대를 볼수있어 행운이라 생각을 하며 미남불을 바라본다. 미남불이라는 애칭은 부처님의 얼굴이 미남형으로 조각되 미남불로 불리게 됬다고 한다.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1913년경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젔다가 1930년대 충독관사를 철거히고 지금의 청와대로 이사할때 불상은 지금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설명판을 잠시 읽어보고 데크로드와 계단을 내려서 인수문앞에 다시 도착을 한다.

 

관저 지붕과 경복궁 광화문광장등이 보인다.

인수문으로 내려가는 데크계단길.

인수문앞에 다시 도착을 해서.

침류각으로 내려가기전 관저의 철문을 나서며 대통령 봉황 휘장과.

침류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3호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로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뚯에서 '침류(枕流)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의미한다.침류각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은 이후의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에 침류각이 보이지 않고 1920년대의 한옥 건축 양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의 건물로 추정된다.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으나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이 건물은 중안에 방과 넓은 마루인 대청을 두고, 앞쪽으로 한 단 더 높게 만든 누마루를 설치하여 한옥 건물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건물의 기단 앞에는 물을 담아 수련등을 키우는 돌로 만든 연못, 화재를 대비하여물을 담아두는 두멍이 배치되어 있다.

 

인수문을 출발하여 관사 통제문을 나서며 대통령 상징 봉황새 휘장과 사진을 찍고 침류각앞에 도착을 한다.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없는 침류각은 관저와 상춘재 중간쯤에 자리하고 기와집 옆으로 생뚱맞게 초가집 한채가 지어져 있다.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다. 침류각은 1900년대 지어진 것으로 예상되는 궁궐 전통가옥으로 흐르는 물을 베개삼는 다는 뜻으로 枕流라는 이름이라고 한다. 이 건물역시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 이자리로 옮겨젔다고 한다. 특별히 볼것이 없어 한바퀴 돌아보고 포장길을 따라 내려와 상춘재 앞에 도착을 한다.

 

침류각과 상춘재 중간에 있는 휴식터.

상춘재는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을 뜻하는 한옥건물로 귀빈을 맞아 의전행사나 비공식 회의장소이며 궁권 한옥양식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외국 귀빈에게 소개하는 장소이며 국빈만찬을 진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82년 11월 기존건물을 헐고우리 전통가옥으로 1983년3월 완공했으며 대궐을 짓던 수령200년 이상의 춘양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상춘재​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곳에 20여 평 규모의 "매화실"이라는 이름의 조선총독부 별관 건물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상춘실"로 이름만 바꿔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에 철거되었다. 1978년 3월 양식 목조건물이 들어섰으나 다시 철거되고, 규모를 크게 키워 1983년 4월 5일 전통 한옥양식으로 다시 지어 청와대 최초의 전통 한옥이 되었다.당초 니스칠이 되어있었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니스칠을 벗겨 내고 들기름으로 다시 바르는 등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여야 당대표를 초대하거나 기업인을 불러 호프 미팅을 하기도 했다.대통령경호처 YouTube에 따르면 녹지원에서 상춘재로 올라가는 계단에 천록이 있다고 한다. 이 천록은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천록과 재질이 같다고 한다.

 

기념식수 표지석

녹지원​

이곳도 특별한 날(특히 어린이날)이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녹지 공간. 큰 소나무가 있는 잔디를 깐 야외 행사장이다. 본관 앞 대정원이 국가적인 귀빈을 맞는 행사 등에 쓰인다면 이 녹지원은 좀 더 대중적인 행사에 주로 쓰인다. 어린이나 어르신, 장애인 초청 행사 등 국민을 초청하는 행사는 대부분 여기서 치러진다. 1995년에는 이곳에서 열린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노무현 전 대통령때 본인이 국회의원 시절 만들었던 전산시스템인 노하우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청와대 사상 최초로 도입된 전산 시스템인 e지원은 녹지원에서 따온 이름이다.일부는 텃밭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재배된 보리, 밀과 메밀로 만든 차를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전국 119 상황실에 선물했다.녹지원 건너편에 위치한 한옥 건물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상춘재이다.

 

상춘재를 한바퀴돌고 청와대 최고의 정원이라고 일컷는 녹지원으로 내려온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최고의 녹지공간으로 120여종의 나무가 있고 그중 170년이나 되는 한국산 반송(盤松)이 눈에 확띤다. 주변으로는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식수한 나무와 표지석들이 보인다. 잔디밭 앞으로는 누렇게 익어있는 보리밭이 보이고 그 아름다운 정원길을 따라 소공원을 지나 청와대 헬기장으로 나온다.

 

넓은 잔디밭과 반송이 보이는 녹지원.

소공원앞을 지나며 북악산 봉우리를 올려다본다.

청와대 본관앞으로 와서 정문을 나서 북악산 등산길로 가려고 한다.

정문에 있는 봉황 대통령 휘장.

정문을 나서며 바라본 청와대 본관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있는 경복궁 신무문.

효자동 삼거리 청와대앞 분수대에서 인왕산을 배경으로.

영빈문앞에서 입장수속을 하는 관람객들.

청와대 사랑채와 분수대.

청와대 관람후 북악산 청와대 전망대를 돌고 춘추관앞 헬기장으로 내려온다.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문.

청와대 정문을 나서 칠궁앞 청와대 전망대길을 따라 올랐다 내려올때는 춘추관앞으로 내려온다. 문을 나서면 바로앞 대통령 전용 헬기장이 보인다. 가뭄으로 헬기장의 잔디는 누렇게 죽어가고 그 잔디밭에 여러개의 그늘막 쉼터가 있다. 잔디는 말라가고 왜 저기다 그늘막을 만들어 놨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춘추관앞에 선다. 춘추관은 대통령 기자회견장이며 창와대 대변인이 국민에게 알릴말이 있으면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브링핑 하는 장소로 TV에서 많이 봤던 장소이다.

 

춘추관​

내부는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건물. 청와대 프레스센터로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곳에 출입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기자회견장도 여기에 있다.비공식적인 쓰임새가 또 있는데, 바로 극장이다.2000년대 이전만 해도 대통령이 일반 극장에 방문한다는 인식은 생소해서 쉽게 방문하기 어려웠다. 한 번 극장에 갈 때마다 경호원들이 따라붙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경호 문제로 신경 써야할 게 많아지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컸다. 그래서 대통령과 그의 가족, 그리고 청와대 상주 직원들이 영화를 보려할 때 이 춘추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한다. 한예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대흥행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춘추관에서 직원들과 함께 서편제를 감상했다. 물론 영화 상영을 위한 준비 또한 상당히 번거로운 관계로 춘추관에서의 영화 상영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대통령의 일반 극장 방문도 이루어지는 편이다. 한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반 영화관에서 넛잡 : 땅콩도둑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등을 관람한 적이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도 일반 영화관에서 택시운전사 와 1987을 관람하였다.

 

1층에는 기자실이있고 소규모 블리핑룸 그리고 2층에는 대형브리핑룸으로 300여명 정도의 기자들이 상주하고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 이다. 춘추관은 고려와 조선시대 시정을 맞아보던 관청의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정신을 담고있다고 한다. 춘추관을 끝으로 청와대와 청와대전망대 등산을 끝낸다.

 

헬기장에는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하다 힘들면 햇빛을 피해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춘추관 지하에는 청와대 역사 청와대의 건물소개 눛추관 표지석 그리고 마이크가 달린 단상인 대변인 브리핑 단상모형 포토죤등이 있다.

춘추관 표지석앞.

춭추관 출입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연단 모형물

새벽비만 안왔으면 청와대 본관및 영빈관 내부를 보고왔을턴대 아쉬움 속에서도 불과 한달전만 해도 군인과 경찰 경호원들이 물샐틈없이 지키고 접근이 불과했던 청와대가 이제는 완전히 개방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둘러볼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많은 관람인파들이 공중도덕을 지키며 더이상 훼손없이 훌륭한 국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보존되길 바라며 인천으로 출발하기 위해 안국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