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2021. 05. 23일 한남정맥 (수안산, 가현산, 원적산, 계양산, 만월산)

소담1 2021. 6. 1. 11:30

수안산(守安山 147m)

수안산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고도:147m) 대곶면과 통진면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옛 수안현(守安縣)의 이름을 따라 수안산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산은 김포의 가련산(加連山)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맥을 형성하고 있다. 수안산에는 삼국시대 성곽이 남아있는데, 1996년 경기도 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산꼭대기를 돌아가면 돌로 쌓은 성벽이 약 685m 정도 남아있다. 성 안 곳곳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볼 때 삼국시대부터 성터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 안에는 조선시대 설치되어 사용되던 수안 봉수터가 있으며, 옛날 도장군(陶將軍)이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가 묻혀 있다는 도마(陶馬)뫼라고 불리는 무덤이 있다. 수안산 인근의 수안산 생태원도 가볼만한 곳 이다. 수안산 생태원은 자연과 과학을 접목시킨 미래의 농업을 체험해 볼 수 있게 되있으며,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하는 체험학습장이 있어 어린이들이 다양한 곤충과 식물을 관찰 할 수 있다.

 

오늘은 남편의 고향 김포에 한식때 비가와 찾아뵙지 못하고 오늘 선산에가 부모님께 성묘도 하고 산소에 잡풀도 뽑고 오려고 출발을 한다. 40분정도 걸려 선산에 도착하여 묘소를 손질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곳에서 가까운 수안산에 올랐다 집으로 가면서 가현산과 원적산 한남정맥길을 다녀가자고 한다. 수안산은 남편이 어렸을때 국민학교(지금 수남초등학교)를 다닐때 학교 뒷산으로 자주올랐으며 교가에도 수안산이 나온다며"수안산 맑은정기 위로받들어...."하며 아직도 교가를 잊지않고 부르며 수안산으로 출발을 한다.

 

수안산 정상은 넓고 평편하다.

수안정과 돌탑이 보인다.

대곶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꼬불꼬불 좁은 마을길 논길을 따라올라 궁국장인 대호정 까지 차가 올라간다. 대호정에서 빠른걸음으로 올라가면 15분 정도면 충분히 정상에 도착하는 거리이다. 대호정앞 주차장은 그다지 넓지않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국궁장뒤를 돌아 국궁장옆길을 따라 임도로 올라간다. 나중에 내려올때 지름길로 내려왔다. 주차장뒤 작은 창고건물 같은것 뒤로 길이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여러가지 풀들이 길게 자라있었다. 길은 오솔길로 오르기 좋은길이다. 그길을 따라 오르며 곧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넓다. 조망도 훌륭하다. 인천 송도신도시와 청라신도시 영종도 강화도는 물론 검단쪽 조금있다 가야할 가현산능선 김포신도시등과 학운공업단지도 보인다. 정상에는 뿔처럼 생긴 예뿌고 정성들여 쌓은 돌탑 두개가 서있고 그앞으로 "守安山 해발147m"정상석과 사적제159호 수안산성 표지석이 서있다. 정상석을 인증하고 수안정 팔각쉼터앞으로 다가가 수안산전경 사진설명판과 수안산성에 대한 설명판을 보고 빠르게 하산을 한다. 10분정도 걸려 대호정앞 국궁장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올라 두번째 행선지인 가현산으로 향한다.

 

수안산성 설명판 앞에서.

국궁장인 대호정의 모습.

 

 

가현산(歌絃山 215.3m)
인천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경계에 위치한 해발 215.3m의 산으로 비록 높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정산에 서면 동으로는 서울남산, 서쪽은 서해바다와 강화 섬, 북으로는 한강과 김포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산이다
가현산은 인천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경계에 위치한 해발 215.3m의 산으로 비록 높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정산에 서면 동으로는 서울 남산, 서쪽은 서해 바다와 강화 섬, 북으로는 한강과 김포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산이다.

가현산의 유래
고려시대 부터 산의 형세가 코끼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고 불려 오다가 칡이 번성하다하여
갈현산(葛峴山)이라고도 불렸고 서쪽 바다의 석양 낙조와 황포 돗대가 어울리는 경관을 감상하면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하여 가현산(歌絃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 이 산 아래 해안 일대에서 많이 나는 약쑥을 중국과 물물교환하는 무역이 활발하게 되자 이 산 부근에 주막집이 번창케 되면서 가무를 즐기게 된 것도 산의 명칭이 변하게 된 사유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수안산을 다녀 내려와 남편이 양곡중학교 출신이라며 양촌읍을 지나며 이야기 한다. 신도시가 들어오며 많이 변한 양곡을 지나 구래동도 지나고 스무네미고개를 넘어 가현산 묘각사 일주문 역활을 하는 아치문앞 공터에 주차를 하고 묘각사로 들어선다. 가현산은 진달래꽃이 폈을때 여러번 왔었던 곳이다. 묘각사 대웅전을 지나 부속건물 뒷쪽 나무계단을 올라서 산길을 따라 오르면 군부대 임도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묘각사 전경.

대웅전과 부속건물.

임도에서 진짜 가현간 정상은 우측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봉우리인데 출입이 통제되 그앞쪽 진달래 군락지가 가현산 정상 노릇을 하고 있다. 임도삼거리에는 가현산 종합안내도가 크게 서있다. 그앞 데크 목재계단을 올라서 능선을 조금만 걸어가면 돌제단과 뒷쪽으로 묘비처럼 석재지붕까지 씌여진 "가현산215.3m"정상표지석이 서있다.

 

가현산 정상표지석앞.

정상석을 만나고 앞쪽 가현산 진달래 시비와 돌탑앞으로 간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서해의 풍경은 대단하다. 지금은 수도권 매립지와 학운,검단공단이 들어서있고 동아간척지가 막혀 있지만 강화도와 영종도 그리고 청라 신도시등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내려다 보고 헬기장으로 가다 기와지붕 담장안에"가현산 수애단"제단을 지나고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소나무군락지 가현정앞에 도착을 한다.

 

가현산 수애단.

진달래 군락지.

가현정.

군락지를 지나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군락지 끄트머리에 가현정이 서있다. 그곳에서의 풍경도 대단하다. 동쪽으로는 김포신도시와 김포시내 그리고 한강넘어 일산과 북한산이 조망이되고 가현정 뒷쪽에서는 양촌읍과 마송 문수산 강화도가 보이고 날씨 좋은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고 한다. 이제 또 내려가야 한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묘각사앞 주차된곳으로 내려와 세번째로 올라야할 원적산을 가기위해 서구근린공원으로 향한다.

 

 

원적산(元積山)

원적산은 그동안 천마산 또는 철마산으로 불리웠으나 인천시에서 지명위원회를 통해 산 이름을 변경하여 현재는 원적산으로 불리우고 있다.원적산(元積山)은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원래 표기는 ‘元’이 아니라 ‘怨’으로 원한이 맺힌 산이란 뜻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세곡을 뱃길로 운반할 때 삼남지방의 세곡선이 김포를 지나 강화해협을 지나는데 손돌목에서 자주 좌초되어 서해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굴포작업을 하는데 원통이 고개를 파니 암석만 나와 실패하고 또 다시 안아지 고개를 파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 해서 원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원적산에 유래하는 전설로는 이 산 밑에 위치한 가정동 마을은 합천 이씨가 대성을 이룬 명문가인데 이 문중에서 아기 장사가 태어나가 그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 나머지 아기 장사를 죽이자 산중에서 용마가 나와 울면서 떠났다는 전설이 있고 마제석은 그 용마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이 산에서 천마가 나왔다고 하여 처음에는 천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원적산은 192,000평의 광활한 산림과 표고 226m로 우리 서구 및 부평구와 계양구 등 3개구가 연접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팔각정정 설치를 위한 사업추진을 본격화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산의 이름을 명명하여 서구 관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원적정 건립계획을 수립하여 한식목구조 및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총 사업비 2억 9천만원을 들여 연면적 48.83㎡, 높이 5.55m, 2층 구조로 1996년 9월 9일부터 사업 착공하여 1997년 6월 30일에 완공,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서구근린공원에 도착을 한다.주차장에는 운동하는 사람과 원적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차로 주차할곳이 없다. 주차장을 찾다 등산로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곳에 자리가 있어 세우고 입구로 들어선다. 넓은 공원길 계곡을 따라 임도길을 올라 좌측 등산로로 들어선다. 여러갈레의 등산로가 있지만 우리는 제일 넓은 길과 데크계단길로 들어선다.

 

원적정 앞에서.

우측 우회길과 윗쪽으로 올라가면 원적산 정상이다.

계단은 원정적까지 길게 이어진다. 헉헉되며 계단길을 올라서자 규모가 큰 원정적이 서있다. 원적정에서 우측으로 한남정맥길을 따라 만월산쪽으로 진행을 하니 원적산 정상을 우회하는 길과 작은 부스러기 자갈길을 따라올라 직진하여 오르니 넓고 큰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이 원적산 정상이다. 한남정맥 안내도와 군부대에서 세운 경표판 사이에 날짝한 정상석이 묻혀있다. "우리산바로알기 원적산(해발211m)GPS기준 2007.3 인천광역시 통,리장연합회"가 새겨진 작은 정상석을 인증하고 올라왔던길을 따라 부지런히 내려와 한남정맥상에 있는 3개의 작은 봉우리를 올랐다가 집으로 향한다. 부모님 묘소도 돌라보고 작지만 한남정맥길도 걸어보고온 하루였다.

 

 

계양산(桂陽山 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자 주산(主山)이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桂陽山城)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산의 이름은 고려 초기 수주악(樹州岳), 고려 의종 이후 안남산(安南山)으로 불리다가 고려 고종 때 계양도호부가 설치된 후 현재의 계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조선시대 대동여지도 제13첩 인천편에서 여전히 안남산(安南山)으로 표기된바있다. 계수나무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으나, 이들 나무는 인천 일대에 자생하지 않는 종이어서, 실제로는 계양도호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 내탁식(內托式)에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4] 산의 서쪽에는 조선 고종 때 해안방비용으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를 따라 축조되어 있었다.[2]

 

 

계양구 부평구 일대를 내려다 본다.

아라뱃길과 일산쪽 풍경.

아라뱃길을 당겨보고.

정상전 헬기장에서.

정상에 올라서서.

정상석앞에서.

계양정앞.

중구봉 천마산 원적산 만수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길.

서해바다쪽 청라신도시와 아시아드 주경기장쪽.

 

만월산(滿月山 187.1m)

만월산(滿月山)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남동구 간석동, 만수동 사이에 위치한 으로 높이는 해발 187.1m이다.

만월산은 흙과 돌이 모두 붉은색을 띠고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 하여 원래 주안산(朱雁山)이라고 불렸다. '주안'이라는 지명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주안동(朱安洞)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만월산은 이 외에도 원통산, 선유산(仙遊山)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현재의 명칭은 1920년대에 보월 한성안 스님이 산 정상에 올라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특히 산세가 인천 도심 쪽을 향해 좌우로 팔을 벌려 모든 만물을 감싸 안을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 동방만월세계약사유리광불(東方滿月世界藥師琉璃光佛)이 계시다'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1].2005년만월산터널이 개통되는 등 주변이 많이 변모하였다. 원래 만월산 자락에 있던 국가정보원 인천지부가천의과학대학교연수구로 이전된 반면, 인천메트로 본사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도로도 확장되었다. 2009년 겨울부터 만월산 남쪽의 간석동 일대에서 재건축으로 인한 철거가 진행 중이다. 인천가족공원과 인천대공원이 바라보이며,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으나 아파트 재건축 등의 영향으로 조망이 어려워졌다.

만월산 정상석에서.

정상석 앞과뒤.

만월산 칼바위능선.

중구봉과 계양산.

문학산.

문학경기장과 문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