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018. 02. 24일 해파랑길 49코스

소담1 2018. 2. 27. 13:25


트레킹장소 : 해파랑길 49코스

트레킹일자 : 2018년 2월 24일 토요일

트레킹인원 : 인천산친구산악회 74명과 함께

트레킹경로 : 대진항-초도해변-초도항-화진포해변-이기붕별장-화진포성(김일성별장)-응봉-거진해맞이공원-거진등대-거진항

트레킹시간 : 12:10 ~15 : 40 (3시간30분)


화진포해변

화진포해변은 고성에서 겨울 바다의 낭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추운 날씨에도 서로 어깨를 꼭 껴안은 연인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을 거닐고, 아이들은 밀려

드는 파도와 장난치느라 마냥 즐겁다.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화진포 백사장은 파도가 지날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소리를 낸다. 조선 시대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진포 백사장을 명사(鳴沙)라고 했다. 화진포는 드라마 <가을 동화>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어린 시절 모래에 그림을

그린 곳도, 준서가 싸늘히 식어가는 은서를 업고 하염없이 걸은 곳도 화진포해변이다.

화진포해변 옆에 화진포의성이 있다.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인근 이승만·이기붕별장과 함께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단장되어 한국전쟁 관련자료를 전시한다.

화진포의성은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 베버가 1938년 건축했다. 당시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삼팔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외국인 휴양촌의 귀빈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김경희 등 자녀를 데려와서 귀빈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화진포해변 뒤에는 화진포가 자리한다.

화진포는 넓이 2.3㎢, 둘레 16km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 호수로, 한쪽에 이승만별장이 있다. 단층 슬래브 형태 건물은 현재 이 대통령 내외의 유품전시관으로 운영된

다.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화진포의 성 (花津浦의 城)
 1937년 일본 군부는 비행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원산의 휴양촌을 강제 철거키로 결정하였다대신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약 1백 마일 떨어진 이상적인 장소를 선교사들의 휴양지로 제공하였다선교사로서 당시 휴양지 이전에 대한 실행위원이었던 셔우드 홀
(Sherwod Hall) 박사는 독일에서 히틀러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베버(H, Weber) 에게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면한 암벽위에 짓게 하였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지은 원통형 2층 건물을 현위치에 지었는데 마치 유럽의 작은 성을 닮은 모습의 멋진 건축물 이었다
셔우드 홀은 평양 감리교 선교 개척자인 캐나다인 아버지 윌리암 제이미스 홀과 조선에서 병원, 학교, 교회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사
이에서 태어났다셔우드 홀은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함께 공부한 미국인 의사 메리안 바텀리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의료
선교 사업을 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1932년에는 결핵치료를 위해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것으로 유명하지만일제시대에는 간첩으로 몰려 형무
소 생활과 한국으로부터의 강제 추방을 당하는 등 심한 핍박을 받기도 했다조선사람의 질병 퇴치를 위해, 온 가족과 함께헌신한 선교사이며 파란눈의 조선
인인 셔우드 홀은 그의 부인, 그리고 부모와 함께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화진포성을김일성 별장으로 불리운 까닭은 ?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1948년부터 김일성의 가족들은 경관이 매우 뛰어난 화진포의 성을 여름 휴양을 위한 숙소로 이용하게 되었고이에 따라
"김일성 별장"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전쟁 중에 훼손되어 1964년 재건축하였으며 1999년 이후 안보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기붕별장
이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서 해방이후에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오다가 휴전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여왔다고 하며 1999년7월 전시관으로 개보수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라 한다.
이기붕 부부는 모두 권력욕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깡패(이정재)를 이용해 서슴없이 폭력을 휘둘렀고, 큰 아들을 이승만의 양자로 주어 권력에 아부 했다. 이승만이 죽으면
자리를 승계하고자 3.15 부통령 선거에서 투표함 바꿔치기를 했다. 이게 발단이 되어 4.19 혁명이 일어나고, 자살로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1945년 이승만의 비서역할로 정치에 입문을 했습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궂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헌법 개헌에 앞장서기도 합니다. 득표율이 거의 반반이었는데 '사사오입' (반올림)을 내세워서 가결을 강행했다. 그야 말로 호가호위, 무소불위가
생각나는 삶이었다.

오늘은 해파랑길 마지막구간인 49코스를 가는 날이다. 그곳에 간낌에 고성 통일전망대를 돌아보고 온다고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발을 하여 통일전망대
2시간정도 관람을 하고 12시가 가까운 시간에 해파랑길 49코스 전체를 돈다는것은 시간이 부족하다며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부터 금강산콘도가 있는구간
3km정도를 건너뛰고 대진항부터 화진포 응봉을 지나 거진항까지 간다고 대진항 해상공원앞 광장에 버스가 도착을하여 하차를 시켜준다.대진항을 알리는
표지설명판뒤로 해상공원을 알리는 큰 아치문으로 들어서 해상 잔도길을 잠시 걸으며 사진을 찍고 대진등대도 바라보고 출발을 한다.
아침보다 점점 기온이 올라 바닷바람은 불지만 그다지 춥지않은 파도소리 들리는 길을따라 대진항을 벗어나 초도해변 모래사장길로 들어서 하얀 물보라를
이르키며 크게 몰려오는 겨울 파도소리를 들으며 성개주산지 초도항 입간판 작은언덕을 넘어서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초도항 방파제아래 바람도 조용한
장소를 잡고 70여명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는다. 초도항은 성개 해삼등으로 유명한 작은항구로 화장실 시설도 깨끗하고 항주변에는 식당도
횟집도 없는 작은 항구이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방파제끝에 빨갛등대도 바라보고 화진포해안으로 가기위해 발길을 옮긴다.

항구 끝부분에 초도항을 알리는 조형물과 방파제 끝으로는 초도마을의 특산물인 웃는 모습의 초도마을 성돌이 성개모양과 화진포노래비 그리고 해녀상이
서있다.그앞으로 가서 사진도 찍고 다시 돌아나와 금구도(관개토대왕릉)도 건너다보고 초도항을 벗어나 잠시 포장길을 따라 걷다 화진포 해수욕장이 있는
화진포해변으로 내려선다. 고운 모래밭길을 걸으며 몰려오는 동해의 파도와 사진도 찍으며 화진포군인 콘도앞을 지나 큰 거북 조형물앞에서 주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송림이 우거진 소나무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기붕 별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지난여름 휴가를 와서 돌아봤던 낮익은곳으로 이승만
이기붕 화진포성이라 일컫는 김일성별장을 차례로 둘러보고 응봉을 다녀오며 하도 풍경이 좋아 산악회에 추천을 하여 산악회원들과 다시 찿아오게 됬다.
이승만 별장은 7번국도를 지나자 초입에 있어 해파랑길에서 조금거리가 먼 금구교 건너에 있기에 오늘은 이기붕 별장을 둘러가기로 하고 울창한 소나무
으로 들어선다. 그당시 부통령의 별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협소하다. 옛날에는 크게 느껴젔을 것같지만 지금은 응접실 집무실 침실로 이루어진 작은
별장을 돌아보고 다시 해안가로 나갔다 화진포성으로 가기위해 윗쪽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포장길과 급한 계단길이 있다. 계단길을 따라올라 김일성 별장앞
에 도착을 한다. 그전에 왔을때는 이승만 별장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이곳까지 그표를 가지고 둘러봤는대 오늘은 겉모양만 둘러보고 응봉으로 향한다.
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위에서 화진포해변을 바라보는 풍경은 대단한 조망을 자랑한다. 화진포해변 넘어 금구도는 물론 우리가 출발했던 대진항 그리고
흐리지만 멀리 해금강의 말무리해변까지 조망이된다. 아쉽게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거운데 남한쪽에 있는 봉우리 향로봉과 금강산 비로봉은 조망이 안되
섭섭한 마음으로 금강소나무사이 데크계단을 따라올라 능선위에 선다.왼편으로는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오른편쪽으로는 화진포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 해안가는 군사보호구역이라 군대에서 설치한 군 철책과 초소들이 바닷가쪽으로 능선길을 따라 길게 쳐저있다.

완만하고 편안한 소나무능선길을 따라 콘크리트 입고길도 만나며 1차전망데크위에 올라선다. 화진포호수와 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화진포콘도와
울창한 송림이 내려다보이고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선명하다. 진행방향으로는 응봉이 올려다 보인다.전망대를 출발하여 매트가 깔린 산길을 따라 금방 응봉
정상에 올라선다. 응봉정상에는 작고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응봉은 해발122m 밖에 안되는 봉우리이지만 높이가 중요한것이 아니라는듯 눈이 호강
하고 마음속까지 후련한 비경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곳이다.멋진조망 때문에 내려가기 싫은대 지난번와서 둘러본곳 인대도 자꾸 머물고 싶어 표지석 뒷쪽으
로 돌아가보니 옛날부터 화진포호수 동쪽에 위치한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하여 매"응" 鷹자를 써서 응봉이라 불렀다는 문구까지 보고 하산을 시작한
다. 하산하며 화진포호수와 화진포 해변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금강산에서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 마금루를 길게 바라보고 거진항을 가기위해
발길을 옮긴다. 응봉에서 하산길 지그재그로 잘 만들어진 내리막길도 걷고 도로를 건너는 예뿐다리도 건너 또하나의 임도길을 가로질러 오름길을 올라간다.
편안하고 잘만들어진 길을 따라 거진해맞이봉 살림욕장으로 향한다.가는길 해오름쉼터 아치문이 서있지만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기에 그
냥지나쳐 매트가 깔린길을 따라 작은 화장실을 지나올라 복어모양 석조 조형물과 12지신상앞을 빠르게 지나오른다.
작은 석조등대와 2층으로된 팔각정자 쉼터에 도착하여 잠시휴식후 거진항 해맞이봉 산림욕장 표지석을 지나면 앞쪽으로 거진항등대가 건너다 보인다.
그리고 등대앞 삼거리길에서 우측은 거진항이 표시되있고 우리는 좌측으로 등대쪽으로 가서 긴 철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거진항표지판 앞에서 오늘의 일정
을 마무리한다.3시간30분 아름다운 해파랑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다시 통일전망대까지 둘러본 멋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길 용대리 황태구이집에서 식사

를 하고 이번주는 산이아닌 바닷길 해파랑길 49코스로 일주일을 마감한다.

출발지점인 대진항 해상공원.


대진항 조형물.







해상공원에서 바라본 대진등대.




초도해변.



                                                                         초도항 입간판앞.




초도항.





초도항 조형물앞에서.




초도항에서 바라본 금구도.



화진포해변을 걸으며.






화진포 거북조형물에서.







이기붕 별장가는길.


별장 집무실.


이승만대통령의 초대비서였고

국방장관, 서울시장, 국회의장등을 역임한 이기붕 부통령 별장입니다.

이기붕부통령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손으로,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었다가 임오군란에 연루되어 처형된 이희정의 증손이었다고 합니다.

이승만대통령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의거한 4.19혁명으로

붕괴한 자유당정권의 몰락과 함께

맏아들 이강석의 총격으로 전가족이 권총자살하는 비운을 맞아하게 됩니다. 

 




별장 앞에서.







화진포성 가는길.




화진포성(김일성별장)




화진포해변과 금구도.





해파랑길 응봉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금강송 능선길.


1차 전망대에서 올려다본 응봉.


전망대에서 화진포쪽.


응봉 올라가는길.


응봉 돌탑에서 화진포쪽으로.






                                                                              응봉 정상표지석 앞.



정상에서 내려다본 화진포의 비경.










복어 조형물앞.


12지신상.


거진 해맞이공원.








                                                                                     거진등대앞.


거진항.





거진 해파랑길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