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장소 : 서울도성길(김신조루트.북악산)
트레킹일자 : 2020년 2월 8일 토요일
트레킹인원 : 인천솔길산악회 10명과함께
트레킹코스 : 와룡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안내소=성북천발원지-서마루-솔바람교-호경암-남마루-하늘전망대-하늘교-북악스카이웨이휴게소-성북천발원지
숙정문안내소-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사태소나무-백악산-창의문안내소-자하문고개
트레킹시간 : 10 : 00 ~ 12 : 00 (4시간)
서울 성곽길(한양도성길)/ 북악산 성곽길
한양도성은 북악산(342m), 낙산(126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길이 약18.2Km, 높이는 약12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 되었다. 한양도성은 태조4년(1395)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1396년 농한기인 1,2월의 49일동안 전국에서 11만8천명을 동원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청문(뒤에 숙정문으로 개칭))과 4소문(동북 홍화문(뒤에 혜화문으로 개칭),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뒤에 소의문으로 개칭))을 준공 하였다. 그후 27년이 지나 세종4년(1442)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명의(당시 한양인구 약10만명) 인부와 2,200명의 기술 자를 동원 하여 한양도성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 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 시행 하였는데(공사로 인한 사망자수 872명) 이것이 지금 한양도성의 골격이다.
오늘은 내가 다니는 산악회 정기산행이 없는날이다.
한양도성길 북악산구간(김신조루트포함)이 번개로 공지되 뜻이맞는 회원 10명과함께 전철역에서 만나 출발을 한다.오래전인 2010년 김신조루트길이 개방됬을때 다녀왔는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종각역에서 내려 3-1출구를 빠져나와 02번 마을버스에 올라 고바위길을 힘들게 올라서 성균관대학교 후문에서 하차를 하고 와룡공원쪽으로 올라간다. 와룡공원 표지판앞에서 인증하고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올라오면 나오는 성곽길이 뚫려있는 말바위쉼터로 가는 성곽으로 들어선다. 서울성곽 한양도성길은 총18.6km로 작년에 남편은 혼자 란바퀴돌았고 나도 숭례문에서 삼성강북병원을 지나 인왕산 입구까지만 뺀구간은 걸었던 길이다.도성에는 4대문(숙정문,숭례문,흥인지문,돈의문)과 4소문(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희문)을 두었다. 입구로 들어서 높은 성곽길을 따라 말바위쉼터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김신조루트길을 먼저 다녀와야 되겠기에 우측 성곽외벽을 따라 삼청터널위를 지난다.그리고 곧 숙정문안내소앞에 도착을한다. 아랫쪽으로 북악산개방 표지석이 보인다 잠시 내려가"제62회 식목일 북악산전면개방기념조림 2007년4월5일 대통령 노무현" 표지석을 만나고 다시올라와 우측으로 오래된 계단과 데크계단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오래된 콘크리트 계단은 이곳을 통제하던 시절 군인들이 사용했던길로 보인다.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삼청각쉼터가 크게 자리잡고있다. 이곳에서는 성북동 마을과 으리으리한 한옥한채가 내려다 보인다. 그건물은 지난 암울했던 시절 역사가 깃든 검물 삼청각(三靑閣) 이다. 삼청각은 1972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 청운각 대원각과 함께 고급요정으로 알려져 있고 30여년 가까이 정치인들의 폐쇄적인 공간으로 은밀한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그러다가 2001년 서울시가 인수하여 리모델링후 지금은 전통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후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고 북쪽 대표들과 만찬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삼청각 전망대앞 작은 언덕을 넘어 조금내려가면 수고해다리가 나온다. 이 길들은 1.21사태때 김신조를 비롯 청와대 습격을 하러온 공비들이 걸어왔던 길이다.1.21사태가 나기전까지는 북악산 성곽길과 달리 주민들이 자유롭게 걸었던 길이였는대 사태후 계속 통제되오다가 2010년2월27일 홍련사에서 북악산 북쪽능선이 북악하늘길이라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되여 오늘에 이르게 되였다. 수고해다리를 건너면 성북천발원지 팻말이서있다. 성북천은 이곳에서 발원하여 성북동과 삼선교 제기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7.7km의 하천이다. 이곳에서 윗쪽으로 올라가면 북악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직진을 하면 솔바람교를 지나 서머루 호경암쪽으로 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서면 서마루쉼터가 나온다.서마루에서는 북악산 성곽이 잘 보이고 삼청각건물의 뒷모습을 볼수가 있다.도울의 도심과 남산은 물론 조금있다 올라야할 백악산정상의 봉우리도 올려다보이는 곳이다.이곳에는 이정표가 없어 잠시 길을 찿아본다. 앞쪽으로 나무쪽문이 있는대 그길인가 하고 살펴보니 그길은 군부대로 올라가는 길이다. 서머루쉼터를 끼고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긴 계단이 이어지고 계곡을 건너는 이름도 예뿐 솔바람교를 건넌다. 솔바람쉼터가 있고 그앞으로 작은 약수터가 자리잡고있다. 이곳부터 올라가는 지그재그 계단길은 가파르고 길다.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서면 서마루보다 높은곳에 위치한 남마루전망대가 나온다.물한모금과 과일을 꺼나 먹으며 좋은 조망은 아니지만 성북동마을과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의 북동부지녁을 내려다보고 와룡공원에서 말바위쉼터 곡장으로 이어지는 성곽길과 그넘어 서울도심까지 바라보고 출발을 한다. 잠시 능선길에는 군부대로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있고 호경암쪽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잘 만들어져있다. 화장실앞을 지나 우측으로 잠시올라가면 김신조루트중 가장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호경암이 나온다. 김신조루트의 상징이된 호경암은 청와대습격을 계획하고 북악산(청운동)까지 왔던 공비들이 우리군에 의해 발각되 일부공비들이 퇴각하다 호경암에 몸을 숨겼어ㅛ다고 한다. 교전끝에 모두 사실된 장소라고 한다. 호경암 총탄자욱 아래에는 1.21사태 격적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서있다.울퉁불퉁한 바위벽에는 페인트로 총탄자욱을 선명하게 칠해놓았다. 비극의 현장을 지나 호경암 꼭데기 암봉에 올라선다. 처음에는 호경암이 사찰의 암자로 생각을 했었는대 김신조 침투사건의 격전지로 이들을 격퇴한 부대이름을 따서 호경암(巖)이라고 지였다고 한다. 정상에는"호경암 맹호3중대 79.10.17일이 새겨진 표지석이 서있다. 호경암을 지나 5분정도 걸어내려오면 하늘전망대가 나온다.하늘전망대에서는 북한산 남쪽의 전경이 병풍처럼 쳐저있고 북한산 비봉능선(족두리봉에서 시작하여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과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보현봉에서 칼바위능선을 지나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림같이 보인다. 그앞 양지바른곳에 위치한 구기동마을과 평창동마을은 물론 눈을 돌리면 정릉일대를 지나는 내부순환도로와 도봉구 강북구 도봉구를 비롯 수락산 불암산까지 잘 조망이된다. 무었보다도 평창동이나 정릉쪽에서 바라보는 형제봉은 또렸하지 않은 봉우리로 보이나 이곳에서는 두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형제같이 보여 이래서 형제봉이라고 부르는 구나 하며 주변을 조망하고 북카페 소나무숲을 지나서 북악스카이웨이를 가로지르는 하늘교에 도착을 한다. 6각정자와 운동기구가 설치된 하늘마루쉼터를 지나 스카이웨이로 내려선다.스카이웨이는 옛날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했고 눈이오면 서울에서 제일먼저 교통을 통제했던곳이다.
그길을 걸어 북악팔각정 휴게소에 도착하여 한바퀴 돌아보고 성북천벌원지쪽으로 계단길을 걸어 내려와 곧 숙정문 안내소를 통과한다. 오래전에는 신분증은 물론 인적사항을 자세히 기록하고 출입증을 받아 목에걸고 100m간격으로 사복군인들이 서서 사진도 통제를했고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었는대 지금은 다 필요없이 출입패를 내준다. 출입증을 목에걸고 긴 계단길을 올라 숙정문앞에 도착을 한다.숙정문은 서울성곽의 북대문으로 태조5년(1396년)에 지금보다 서쪽에 건설됬다가 연산군10년(1504년) 성곽을 보수하며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넓은공터를 찿아 간식을 맛있게 먹고 숙정문안으로 들어서 소나무가 곧게자란 성곽길을 따라 촛대바위앞에 도착을한다. 촛대바위는 1920년 일제 강점기때 민족의 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쇠말뚝을 박았던 곳이라고 한다.그곳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백악곡성에 도착을 한다.곡성(曲城)은 주요지점이나 시설을 방어하기위해 시야좋은 높은곳에 성벽을 둥글게 쌓아 망루역활을 하고 적의 침투를 사전에 탐지하고져 돌출시켜 성을 쌓아 놓은곳이다. 이곳에서도 백악산과 인왕산 북한산과 서울의 도심이 모두 잘 내려다 보인다. 곡성을 지나내려와 성곽을 빠져 나오는 암문을 나와 外城을 따라 올라가다 계단을 만들어 성곽을 넘게만든 곳을 넘으면 청운대 밋밋한 봉우리가 나온다.청운대는 북악산 한양도성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곳으로 경복궁은 물론 광화문광장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인다."淸雲臺해발293m"작은 표지석이 서있다.앞쪼긍로는 나무벤취가 몇개있다.인증사진 한장 남기고 백악마루와 청운대중간에 자리잡고있는 1.21사태 소나무앞을 지난다.수령이 200년정도의 소나무에 15발의 총탄흔적이 그때의 아픈기억을 표현하고 서있다.계단을 따라 올라 백악산은 좌측으로 20m정도를 올라가야 만날수있다. 백악마루에 올라 넓은 정상 한쪽에 자리잡고있는"白岳山 해발342m"와 인증을 한다. 백악산이란 이름은 북악산의 옛이름이다. 앞쪽으로 큰 암봉위까지 올라갔다 내려와 창의문 안내소로 내려가기 시작을 한다.성곽길은 가파르고 계단간격이 넓고 높다 조심조심 내려오며 우측으로 북한산자락을 앞쪽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창의문 안내소에 도착을한다. 목에 걸었던 출입증을 반납하고 창의문앞으로 내려온다.사적 제149호인 창의문은 임진왜란때 소실됬던것을 영조17년(1741년)에 다시세운 것이며 인조반정때 반정군이 이문을 통과하여 도성에 들어온것을 기념하기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자하문이라고도 불리고있고 사소문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남아있다.창의문을 내려서 자하문고개로 내려오면 1968년1.21사태때 종로서장으로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앴던 최규식 치안감의 동상과 정종수경감의 동상을 만난다. 그앞 횡단보도를 건너 윤동주시인기념관앞 버스정류장에 도착을하며 4시간의 성곽길(김신조루트포함)을 걷고 버스에 올라 종로3가로 나온다. 방송에 까지 소개됬던 허름하지만 정갈하고 깨끗한 맛집에서 거하게 뒤풀이를 하고 전철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와룡공원.
말바위쉼터 가는 성곽길입구.
서울도성 성곽.
말바위쉼터 오름길.
역사가 깃든 삼청각.
숙정문 안내소.
북악산 개방표지석.
수고해다리와 성북천발원지입구
성북천 발원지 표지판앞.
서마루쉼터.
서마루에서 바라본 북악산.
서마루앞 군부대로 올라가는 입구.
서마루전망대의 모습.
서마루에서 솔바람교로 내려오는 계단길.
솔바람쉼터.
서울 도성뒤로 북악산정상.
서울도성과 삼청각.
남마루쉼터.
호경암.
1.21사태때의 격전지 50여발의 총탄자욱이 남아있는 호경암.
호경암표지석.
하늘전망대.
형제봉뒤로 보현봉과 칼바위능선.
북한산 보현봉.
하늘교위에서.
하늘교.
북악스카이웨이.
비봉능선과 평창동마을.
북악팔각정.
북한산 비봉능선의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보현봉이 보인다.
숙정문 안내소로 들어서서.
숙정문안내소.
숙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숙정문앞.
성곽에서 바라본 팔각정.
성북동마을.
촟대바위.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은 흐리다.
족두리봉과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쪽.
청운대에서.
청운대의 모습.
1.21사태소나무의 총탄자욱.
백악산 정상에서.
정상암봉위.
북한산자락의 구기동 평창동마을.
창의문으로 하산길.
건너편 인왕산.
창의문안내소.
창의문.
정종수경사 동상.
최규식 치암감동상.
자하문고개.
광화문광장의 시위대.
산행후 거하게 먹은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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