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구주소)서울 용산구 갈월동 98-8
전화 : 02-6918-0104
관람시간 : 09:30~17:30, 월요일 휴관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은 말 그대로 '대공', 간첩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하여 조사하는 곳인데, 군사독재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탄압과 고문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예약 : 필요치않음 (정문에서 방명록작성)
완공 : 1976년 / 83년 7층으로 2개층 증축
역사 : 76년 지상 5층으로 준공하며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위장 상호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민청련)의장 김근태가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함
87년 박종철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고문치사 사건 발생
용도 : 대공수사, 불법 고문
규모 : 지하 1층 지상 7층
건축가 : 김수근
소유 :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본부 ( 76~91)
대한민국 경찰청 (91~2018)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18.12월~)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은 원래는 남영동대공분실 이였던 곳이였는대 2018년12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여나게 됬다. 1976년 5층으로 지어졌다가 1983년 7층으로 증축된 남영동대공분실은 대한민국 현대건축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이 사건의 부검의였던 분이 물고문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인을 기자에게 알리면서 진상이 들어나기 시작하였고, 이후 당국이 축소 은폐를 시도하여 수사관 둘만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로 몰아가려고 하자 서울영등포구치소 보안계장이 당시 구치소에 있던 재야인사에게 폭로하였으며, 그 폭로가 우여곡절을 거쳐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에게 전달되었고,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 운동 기념미사에서 〈고문 경찰 축소 조작〉을 폭로하여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이렇게 밝혀진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으며 1987년 6월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여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10월 4일 경찰청에서 과거 청산의 의미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소하면서 역할을 바꾸게 되었고 2008년 6월 10일 4층 및 5층에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개관하여 일반인들의 방문이 허용되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의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이곳은 22년 완공 예정이나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이러한 암울하고 치욕스런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우리의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니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서울에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고 온다며 집을 나서던이 올시간이 지났는대도 오지를 않는다. 늦게 돌아온 남편은 서울에 간낌에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박종철기념관)과 용산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고 한다.민주인권기념관은 남영역 1번출구를 나와 우측으로 첫번째골목으로 가던지 큰길로 나와 조금 돌아가던지 찿기는 어렵지 않다. 골목을 들어서면 남영역과 경계 높은 담아래 검정색 벽돌로 지어진 어두운 건물하나가 보인다. 정문에는 민주인권기념관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도 문을 들어서 방명록을 작성하면 관람을 할수가 있다.앞마당으로 들어서 건물 정면을 올려다 보면 유독 5층에있는 창문만 좁게 만들어져 있다. 이5층 건물이 문제의 조사실및 고문실이 있는곳으로 고문을 받다 창문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하게 좁게 만들어놓았다. 입구로 들어서기전 계단아래에는 동판으로 만들어진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터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사망한곳"이러고 새겨 아스팔트위에 박혀있다. 건물로 들어서 1층에는 대공분실에서 인권센터로 변모된 연혁과 검은벽돌건물에 관하여 또 박종철고문 치사사건에 대하여 또 김근태 전의원의 고문사건들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뒷문을 통하여 피의자들을 건물로 들어가 눈을 가리고 올라갈때 몇층인지 위치감각을 상실하게 하기위한 나선형 계단이 5층까지 연결되있다. 그 계단은 위험하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한다. 4층으로 올라가면 박종철열사의 기념전시관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때당시의 신문들과 계령령과정 방송장악 제5공화국 수립과정등을 설명하고 박종철열사의 옥중편지 일기 연혁과사진들 사용하던 기타와 안경 시계 옷등이 고스란히 간직 전시되있다. 한바퀴 돌아보고 5층 조사실로 올라간다. 좁은 복도 양쪽으로 16개의 방이나온다. 문은 온통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문제가 일어난 509호실 앞에 선다. 정면으로 보이는 박종철열사의 사진이 애잔하다. 유리칸막이로 막아 출입이 금지된 509호실은 방온 방습으로 유물의 변색 훼손을 막기위함이라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유리를 통하여 들여다보니 벽돌로 쌓여진 안쪽으로 물고문 당했던 욕조와 세면대 변기가 있고 그윗쪽에 사진이 놓여있다. 이곳에서 모진 폭행과 고문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친다.그때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변명을 해 분노를 자아내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조사실들은 모두 비어있고 맨끝방인 515호실 왼쪽에서 맨끝방으로 다가간다. 다른방보다 넓고 많은 관련물들이 전시되있다. 이곳은 김근태 전의원이 고문당한 방으로 추모공간과 걸어온 삶과 유품들 물고문 당시에 얼굴을 덮었던 수건들이 전시되있다. 5층까지 돌아보고 내려와 부속건물이 있는대 아마도 그때당시 대공분실 직원들의 식당과 숙소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아픈 세월에 살다 짧은 생을 마감한 박종철 열사의 추모공간을 돌아보고 용산전쟁기념관으로 향한다.
남영역 1번출구.
입간판
인권기념관 입구.
옛 대공분실인 인권기념관 건물.
1층 전시관입구.
전시물들.
1층에서 5층까지 피의자들 눈을 가리고 조사실로 올라가는 나선형계단.
박종철의 옥중편지들.
509호 박종철열사의 추모공간.
물고문으로 사망케한 욕조.
515호 김근태 전의원 추모공간.
5층 조사실이 있는 복도에서.
용산 전쟁기념관.
1964 ~ 1987 국방부 기념관 건립 추진
1988. 06. 22. 대통령 전쟁기념관 건립 지시
1988. 09. 01 전쟁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족
1988. 12. 31. 전쟁기념사업회법 제정
1989. 01. 31. 전쟁기념사업회 창립
1990. 09. 28. 전쟁기념관 기공식
1994. 06. 10 전쟁기념관 개관
전쟁기념관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은 일찍부터 시도되었다. 기념관 건립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 대한 업적과 희생정신에 대하여 국민적 선양사업이 소홀한데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기념관 건립사업은 1964년에서 1971년까지 사단법인 유엔한국참전국협의회에서 가칭 한국 전쟁기념관의 건립계획을 추진한 바 있었다. 1979년에는 중앙정보부에서 가칭 6·25전쟁관 건립방안을 연구한 바 있었으나 재원조달과 부지선정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였다. 1980년에 들어 국방부가 주관하여 기념관 건립연구를 진행하였지만, 이 또한 정치·사회적 변란으로 실행과정에서 중단되었으며, 1987년에 다시 논의된 기념 건립계획도 올림픽 유치 등의 막대한 국가예산 소요로 인하여 논의가 중단되었다.전쟁기념관 건립계획이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1988년 6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이 국방부를 순시하는 자리에서 기념관 추진을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1988년 육군본부의 대전 이동에 따른 용산지역의 부지확보로 전쟁기념관 건립의 여건이 성숙되었다. 국방부에서는 1988년 9월 1일 전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88년 12월 정기국회에서 「전쟁기념사업회법」이 의결되어 12월 31일 법률 제4076호로 공포됨으로써 기념관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1989년 1월 31일 전쟁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으며, 1990년 9월 28일 전쟁기념관 기공식을 가졌다. 그 후 약 4년간의 공사와 전시물 수집을 통해 1994년 6월 1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1가(옛 육군본부)에 대지 35,000평에 연건평 23,000평의 규모로 전쟁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 소장품은 28,543점이었으며, 이 가운데 9,387점을 전시하였다. 2009년 5월 15일 누적관람객 1,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현재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기념관을 찾고 있다.전쟁기념관은 일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전시기능, 자료수집 및 연구기능, 교육활동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호국선열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옥내전시와 옥외전시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시자료는 총 9,000여 점에 이른다. 10,900여 평의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 등 7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옥내전시실은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각종 호국전쟁 자료와 위국 헌신한 분들의 공훈 등이 실물·디오라마·복제품·기록화·영상 등의 다양한 전시기법에 따라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6·25전쟁의 발발 원인과 전쟁 경과 및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쉽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6·25전쟁 당시의 장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대형무기와 6·25전쟁 상징 조형물, 광개토대왕릉비, 형제의 상, 평화의 시계탑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기념관 양측 회랑에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한 장병과 경찰의 명비와 6·25전쟁 참전 유엔군 전사자명비가 있다. 전시 이외에도 전쟁기념관에서는 전쟁사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며, 매월 ‘이달의 호국인물’을 선정하여 선양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전시·연구·교육을 위한 유물들을 확보하여 영구적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으며, 호국문화대학·어린이박물관학교 등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민주인권기념관을 돌아보고 지척거리에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가기위해 미군용산기지가 있던 담장을 따라 삼각지역까지 걸어가서 전쟁기념관 정문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큼지막한 전쟁기념관 표지석이 서있고 중앙에 높이 청동검을 형상화한 6.25탑(2003년 6.25 50주년을 기념하기위한 조형물)과 젊은 용사들의 진군 조형물 그리고 좌측으로 돔모양의 꼭데기에 서로 껴안고있는 형제상(6.25전쟁때 한국군 장교였던 형과 인민군 병사였던 아우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을 보고 넓은 평화광장을 가로질러 기념관으로 향한다.입구계단아래 양쪽으로 6.25참전국에 감사하는 기념비와 국기를 지나 건물입구로 들러가기전 좌우측으로 창군이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국군전사자와 유엔군 전사자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명비를 돌아보고 양탄자가 깔린 입구로 들어선다 "호국전당"이라고 새겨진 입구를 들어서 넓은 로비를 지나면 무명용사를 비롯하여 호국영령의 넔을 기리기 위한 추모공간이 있다. 조용하고 어두운 호국추모실로 가서 묵념을 하고 본격적으로 기념관에 전시된 기록물과 사진 모형등을 관람하려 한다.1층전시실은 전쟁역사실로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까지의 전쟁역사를 전시해 놓았다.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및 왜란 호란을 겪은 조선시대 전시실과 대한제국기 일제강범기 조국의 광복과 독립등이 전시된 공간으로고구려19대 광개토대왕 자료 대마도정벌자료 이순신장군자료 수원화성모형 병자호란기록 항일무장투쟁사 안중근 하얼빈의거 일본 독도침탈기등으로 돌아보고 철계단을 밟고 오르며 거북선 모형을 내려다보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간다. 2층전시실은 6.25전쟁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있다. 1.2 전시실로 나눠져 있는 6.25에 관한 1전시실로 들어간다. 6.25전쟁 발발과배경 남침과 반격등이 설명되있고 2전시실에는 북진과 중공군개입 또 휴전등의 상황이 자세한 설명과 모형 사진등으로 구성되있다.역사의 최대비극 6.25. 중공군개입 백마고지전투 UN 21개국에서 의료및 전투지원부대현황과 김신조 청와대습격사건 판문점도끼만행사건 연평해전등 북한의 만행사도 기록되있다. 민족산단의 아푼역사를 돌아보고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에는 해외파병실 유엔실 국군발전실로 만들어져 있다. 주월한국군사령부 부대명이 붙어있는 문을 들어서면 월남전의 모형 헬기가 돌아가는 실감나는 현장이 만들어져 있다. 해외파병실에는 베트남파병에 관한 기록들이 전시되있다. 베트남 기록사 백마부대와 맹호부대 월맹에 패망한 월남교훈 국군의 발전사(지상무기 개인공용화기 유도무기 해상무기 항공무기 미래무기 무기의발전사 비행기 전투함정 소총 각종포 전차등)등을 두루 돌아보고 옥외전시장으로 나온다. 오래된 수송기를 비롯 전투기 장갑차 각종포 함정등을 보고 정문을 나서며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경제발전과 편안한 삶을 살수있도록 기꺼히 목숨을 받쳐 희생하신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와 명복을 기원하는 묵념을 오래도록 하고 구 서울역을 한번더 돌아보고 가려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전쟁기념관 정문에서.
조형물들.
전쟁기념관 표지석.
전쟁기념관 정면.
전쟁기념관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국방부.
전시물.
중앙청 탈환 태극기계양 모형.
거북선 모형.
무기모형.
추모공간.
야외전시장.
서울역에 도착해서.
옛 서울역 VIP룸.
VIP룸
역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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