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산행

2020. 09. 12~13일 백령도 첫날(심청각, 사자바위,두무진등)

소담1 2020. 9. 15. 12:24

여행장소 : 대한민국 최북단섬 백령도.

여행일자 : 2020년 9월 12(토요일),13일(일요일)

여행인원 : 인천솔길산악회 25명과 함께

여행둘째날: 용기포항-심청각-사자바위-용트림바위-중화동교회-천안함추모공원-두무진-숙소

 

백령도(白領島)

1895년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였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섬의 본래 이름은 ‘곡도(鵠島)’인데,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붙여졌다.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는 넓이 50.98㎢으로,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석지 매립으로 면적이 크게 늘어나 14번째로 큰섬이 되었다.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보이며 해삼, 전복 등 어종도 풍부하다. 또 섬 서쪽 두무진 아래 선대바위는 고려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기묘묘함을 자랑한다. 더욱이 지상 2층 규모의 심청각을 건립하였으며 사곶천연비행장, 두무진 등과 연결되는 백령도 일대를 관광코스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진촌리 북쪽 해안에는 국내 유일의 물범 서식지인 물개바위가, 용기 포구 옆에는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는 규조토 해변(일명 사곶해안)이 있다. 길이가 자그마치 3km,썰물 때에는 3백m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차도로 사용되고 군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백령도는 옹진군의 섬 중에서도 천연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개발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주요 관광지 및 관광코스로는 백령 흰나래길, 심청각, 두무진 등이 있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된'백령 흰나래길'은 백령도의 아름다운 자연생태 경관과 백령도만의 생활상을 그대로 느끼기에 가장 좋은 탐방로로,백령도에 존재하고 있는 4가지 유형의 길 (바닷길, 생태길, 문화길, 마을길)을 용기포 맞이길, 점박이 물범길,심청마을길, 은빛사곶길, 오색콩돌길, 용트림 바위길, 중화포구길, 백령수호길, 두무비경길 등의 코스로 소개하고 있다.또한 백령도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있으며, 진촌리에는 '심청각'이 설치되어 심청이의 효심을 널리 알리고 있다. '두무진'은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며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경관이 가진 신비함을 자아내고 있다.유람선을 타고 해안선을 따라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선대암, 장군바위 등 바다위 기암괴석들을 관람할 수 있다.

 

 

산악회 카페에 백령도 1박2일 특가상품이 나왔다고 공지가 되였다.왕복 선표와 숙박 4끼식사 해상관광비 까지 4만5천원에 간다고 한다. 배표와 숙박비만 해도 그 금액이 초과 될턴대 식사4끼에 저녁 회정식까지 준다고 하니 횡재한 기분으로 신청을 하고 출발하는 날이다.백령도는 지난 2011년 지금으로 부터 9년전에 대청도와 함께 다녀왔던 곳이다. 올여름내내 계속되는 비!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린다고 한다. 걱정을 하며 인천항여객터미널에 7시30분에 도착을한다. 8시30분 배를 타기 위해 승선표도 받고 코로나19에 대한 문진표도 쓰고 8시부터 승선을 시작을 한다. 우리가 타고갈 배는 고려고속훼리(주)에서 운항하는 코리아킹호로 최대 40노트까지 속력을 낼수 있으며 총499명의 승객과 7.36톤의 화물을 실을수 있다고 하는대 코로나19로 인하여 좌석이1/3도 안차고 정시에 출발을 한다. 출발을하니 비는 내리지만 파도가 잔잔해 뱃멀미는 안할것 같다.백령도까지는 인천에서 191km로 3시간40분 에서 4시간정도 걸린다고 한다. 창밖으로 비가 흘러내리고 모처럼만의 여행인데 비때문에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잠시 눈도 감고 잠도조금씩 자다 깨니 창밖으로 소청도가 보인다. 작은 소청항에 둘러 3~4명의 승객을 하선시키고 20분거리의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을 한다. 소청도를 지날무렵부터 비는 그치고 용기포항에 도착을 하니 맑지는 않지만 비도 안오고 시야도 좋아진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감사한다.용기포항은 2층건물로 지어진 여객터미널과 3천톤급 카페리가 접안할수 있도록 201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터미널을 빠져 나오니 우리를 1박2일 데리고 다니며 관광 시켜줄 문화관광 버스 승무원이 인솔자인 남편의 이름이 적히 하얀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라 2.5km정도 떨어진 백령면 소재지인 진촌으로 와서 문화모텔에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두고 점심식사를 하러 바로옆 식당으로 들어간다. 가정식 백반으로 점심을 먹는대 반찬 하나하나가 입맛에 맞고 깔끔하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바로 관광이 시작이 된다. 첫번째로 진촌 뒷쪽으로 한참을 올라가 심청각 앞에 내려준다. 9년전이나 크게 변한것은 없지만 그때는 안개가 너무 짖게 끼어 불과13km떨어진 북한땅인 황해도 장산곶을 바라다 보지도 못했는대 오늘은 바로건너 가깝게 눈에 들어온다. 심청각은 백령도 북동쪽 끄트머리에 세워져 있다.

 

            우리가 타고갈 코리아킹호의 모습.

우리를 태우고 갈 배는 코리아킹호이다. 매일 오전 830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해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까지 1차례 왕복 운항한다. 백령도에서는 오후 130분께 출발해 인천으로 돌아온다. 최대 속력이 40노트에 이르는 이 쾌속선은 총 449명의 승객과 함께 7.36t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단다.

 

               인천대교를 지난다.

               소청도

                소청도항

               대청도항

              백령도 용기포항 도착.

인천항을 출발한지 4시간 만에 백령도의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거리에 비해 오래 걸린 셈인데, 이는 북한 수역을 피해 인천에서 공해로 나갔다가 백령도로 향하기 때문이란다. 백령도에는 여러 곳의 포구가 있다. 하지만 섬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은 1998년 연안항으로 지정된 용기포항이다. 2층 건물인 여객터미널은 3t급 카페리가 접안할 수 있는 신항(新港)과 함께 201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용기포항, 용기포는 이 마을 개울에서 용(龍)이 나와 마을 뒷산에서 승천(昇天)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이 옳다는 것을 이곳 백령도가 증명하고 있나보다. 용기포 뒷산이 바로 용기원산인데, 용기포(浦)에서 승천한 용이 용기원산을 거쳐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주민들이 연초(年初)에 용기원산에 올라 새해(新年) 소원(所願)을 비는 풍속(風俗)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백령도의 북동쪽 끄트머리. 야트막한 산의 정상에는 심청각(沈淸閣)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300백석에 몸을 던진 북한의 장산곶 인당수와 인근 대청도 사이의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했다. 그 옛날 심청이가 뛰어들었다는 절벽(絶壁) 아래의 인당수는 민감한 군사지역(軍事地域)이라서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국(中國) 어선들만 희희낙락(喜喜樂樂)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인망(底引網) 그물을 이용해서 고기들을 싹쓸이 해 간다는 얘기이다. 하긴 중국인들은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참고로 예로부터 인당수를 지나는 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해저(海底)의 바위에 부딪친 해류(海流)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탓에, 수많은 배들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주(船主)들은 용왕(龍王)님의 심술을 달래기 위한 제물(祭物)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에 순결한 숫처녀만 바쳤던 것을 보면, 여자를 보는 용왕님의 시각(視覺)도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북한땅인 황해도가 건너다 보인다.

심청각 뒤 넓은 잔디밭 공터에는 해풍(海風)에 치마를 날리며 바다로 뛰어드는 심청의 동상(銅像)이 있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담장으로 다가가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북녘 땅 장산곶이다. 그 왼편으로 유독 검푸르게 보이는 바다가 임당수라고 한다. 10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 땅을 눈에 담아보라는 듯 망원경을 설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북쪽을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는 장갑차 (작동안되는 폐물로 전시용이다)

심청각을 돌아보고 지척거리에 있는 고봉포구로 내려온다.. 이곳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사자가 입을 벌리고 용맹스레 포효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사자바위라고 불렸으나 최근 이구아나를 닮았다고도 해서 이구아나 바위로도 불린단다. 보는 각도와 파도의 세기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더니 사실이었던가 보다. 사자바위 뒤편 멀리 북한 땅이 건너다 보인다.

 

         사자바위를 볼수있는 전망데크와 뒷쪽으로 사자바위가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트림바위 전망대

용트림바위는 절벽(絶壁)에 걸터앉은 전망대(展望臺)의 바로 아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여러 개의 암석층이 위태롭게 쌓이면서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昇天)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오르는 형상(形象)이 매우 인상적이다. 저곳에는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서식(棲息)하고 있단다. 깎인 절벽 곳곳에 둥지를 튼 갈매기 떼들의 모습이 평소에도 장관(壯觀)을 이루는 곳이다. 천안함의 함미(艦尾) 인양(引揚) 시 모든 방송사들이 이곳 용트림 전망대를 중계 포인트로 삼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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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트림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도

 윗쪽 전망대 올라가는길

용트림바위를 20분정도 둘러보고 ‘중화동교회’주차장에 도착을 한. 지어진지 백 년도 넘었다고 해서 나무로 지어진 한옥(韓屋)을 예상했었는데, 언덕위에 오롯이 앉아있는 교회건물은 의외로 벽돌로 지어진 양옥(洋屋)건물이었다. 중화동 교회는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자생적(自生的) 교회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1865(고종 2) 주민들의 자발적인 모금(募金)과 봉사(奉仕)로 지어졌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백령도에는 지어진지 100년이 넘는 교회가 2곳이나 더 있다고 한다. 백령도가 중국에서 100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탓에,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傳播)하기 위한 교두보(橋頭堡)로 활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교회당 옆에는 기독교역사관을 지어놓았다. 19세기 초에 시작된 백령도와 주변지역에 대한 기독교 선교기록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선교역사박물관이다. 1816년 영국군이 항해 도중 조난당하면서 백령도 중화동에 가장 먼저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1896년에 이미 교회가 지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백령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울릉도처럼 기독교인이 많다는 점이다. 주민의 70-80%가량이 기독교 신자란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2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엄청난 비율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지정학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육로를 통한 포교가 막히자 선교사들은 바닷길을 이용해 풍선을 타고 자연스럽게 커다란 섬 백령도에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몰입도 역시 지정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옳을 것 같다.

 

          기념관 내부

오래된 종은 밖에서 녹쓸고있다.

중화동교회 내부에서

중화동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천안함 순국 46용사’의 얼굴이 새겨진 부조(浮彫) 위령탑(慰靈塔)이 세워져 있다. 천안함이 피격된 곳에서 2.5km 떨어진 곳이란다. 높이 8.7m의 세 개의 흰색 돌기둥으로 세워진 위령탑은, 대한민국의 영해와 영토 그리고 국민을 굳건히 지킨다는 정신을 형상화(形象化)한 것이라고 한다. 위령탑에는 46명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銅版)이 있으며 이근배 시인의 추모시(追慕詩)가 적혀있다. 백령도에는 효의 상징인 심청각과 충의 상징인 천안함 위령탑이 있기 때문에, 충(忠 : 천안함)과 효(孝 : 심청이)가 함께하는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주차장에서 위령탑으로 올라가는 입구.

          천안함 위령탑.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며 명복을 빌었다.

      통로를 빠져 나와 몽돌이 깔린 해안으로 나와본다.

서해의 해금강으로 소문난 두무진의 투어가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두무진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트레킹 코스인 '두무 비경길'과 포구에서 작은 배를 타고 해안가로 떠나는 유람선 투어다. 같은 풍경을 배에서 보느냐 두 발로 걸으며 보느냐의 차이인데, 각기 다른 감흥이 있다. 기암절벽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려면 유람선이 제격이다.

 

       두무진 해상관광용 백령1호

                유람선 내부의 모습.

                두무진항의 모습.

배를 타고 관광에 나선 사람들은 해안의 비경(秘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내지르는 감탄사(感歎詞)의 횟수만큼이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손길도 바빠진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은 북한 출신 실향민들이 시름을 달래는 수단으로 가끔 이용한다고 한다. 두무진을 등진 바다 건너편이 그들의 고향인 북녘땅(자안 곶과 몽금포 해안)이니, 고향을 그리며 애환(哀歡)을 달래기에 잘 어울리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무진 포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절벽 비경을 구경하는 데는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비경

           절벽바위 중간에 있는 해병초소

             두무진 코끼리 바위

‘선대암’을 비롯해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인 ‘코끼리바위’, 비슷한 모양의 두 바위가 껴안고 있는 ‘형제바위’ 등 다양한 이름을 얻은 비경 포인트가 관광객들의 입을 턱 벌어지게 만든다. 열린 입을 간신히 닫으며 돌아오는 길, ‘왼편을 자세히 보세요. 물속에서 노닐고 있는 무언가가 보일 것입니다.’ 가이드는 천연기념물 제331호인 물범이 보인다고 외친다. 지난번에 왔을때는 날씨가 따뜻해 바위위에 여러마리가 올라있었는대 두어마리 정도가 고개를 수면위로 내미는 모습만 보고왔다. 

서해의 최북단에 자리한 백령도는 가는 곳곳이 자연 그대로움이 살아 숨쉬며, 밟는 속속이 천혜의 관광명소인 대한민국에서 8번째로 큰섬이다.언제나 계절에 관계없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 호흡하며 그 맛을 만끽할수 있도록 자연적 조건을 두루갖춘 섬으로써, 각종 모임 단체에서 많이 찾는 섬중에 섬이다. 특히 백령도의 두무진 "선대암" 경관은 조선광해군때(1612) 이곳으로 귀향온 이대기(李大期) 문신은「백령도지」라는 책자 저술에서 "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 이라고 표현하며 경관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으로써 서해의 해금강이라 일컫는 곳이기도 하다.

 

 

            두무진 육로관광 시작점

해상관광을 하며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선장님의 설명을 듣고 두무진항으로 되돌아오는에 엄청난 폭우가 내려 육로관광은 못하겠구나 하며 두무진항에 내리니 언제 비가 왔냐는듯 비구름이 거치고 좋은 날씨로 되돌아왔다.두무진 표지석부터 육로로 비경을 보러 출발을 한다.육로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바닷가나 바윗길에는 데크를 깔았는가 하면 산속에 내놓은 오솔길도 걷기에 부담이 없게끔 잘 닦아 놓았다.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용으로 정자까지 만들어 놓았음은 물론이다. 하긴 2019년 7월 환경부로부터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까지 받았을 정도이니 이를 말이겠는가. 참고로 두무진의 원래 이름은 '두모진(頭毛鎭)'이었다고 한다. 머리카락처럼 뾰족한 바위가 많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후 바위의 형상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것 같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으로 바뀌었단다.

 

                   두무진 통일염원비

                 두무진 전망대

해안산책로를 따라  10 여분쯤 걷자 웅장한 해안( 海岸 ) 절경( 絶景 )이 눈앞에 펼쳐진다 .  백령도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백령도 제일의 절경을 꼽으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첫손을 꼽는 곳이 두무진이라고 한다.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서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벌리고 만다. 당연히 감탄사 한 마디라도 내뱉어야하건만 다들 조용하기만 하다. 빼어난 경관(景觀)에 취해 벌린 입을 다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숱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마모(磨耗)되고 파도에 깎여나간 선대암,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형제바위 등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하는 두무진 해안은 현재 국가문화재인 명승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위 아랫쪽으로 내려와서

바닷가로 내려서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웅장한 해안절경(海岸絶景)이 눈앞에 펼쳐진다. 숱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마모(磨耗)되고 파도에 깎여 나간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의 바위들이 수도 없이 늘어서 있다. ‘마치 대군(大軍)을 호령하는 장수처럼 위풍당당하다.’는 표현이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수많은 기암(奇巖)들이 우뚝 솟아오르고, 깎아지른 암벽(巖壁)은 병풍(屛風)처럼 늘어서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는 수식어(修飾語)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절경인 것이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계단길

                      두무진횟집에서 거하게 회정식을 먹는다

두무진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통일기원비를 구경하면서 트레킹은 끝을 맺게 된다. 투어(tour)가 끝났지만 숙소가 있는 진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 두무진포구에 있는 생선 횟집에 자리를 잡는다. 백령도에서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두무진포구가 유일하기 때문이란다. 다른 산악회에서는 저녁은 자유식으로 회를 먹는대 2만5천원에서 3만원씩 받는다는대 우리는 해상관광및 저녁식사도 포함됬다니 횡재한 기분이 든다.양도 많고 싱싱한회와 매운탕은 일품요리였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도 한잔하고 숙소가 있는 진촌으로 돌아오며 첫날일정을 무사히 끝낸다.

 

                매운탕맛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