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2017. 01. 05~08일 중국 북경 여행 (천당공원, 798예술거리)

소담1 2017. 1. 16. 21:20

 

2017년 1월8일 토요일일정.

중국 북경여행 마지막날 오늘은 호텔레서 체크아웃하고 오전 천단공원과 798예술거리를 관광하고 공항으로 나가는 스케쥴이다.

 

 

국의 천단공원(天壇公園)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황제의 연례행사였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고대 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의 규모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대지면적은 약 273 제곱미터로 황궁인 자금성의 네배에 달한다고 한다.
역시 예전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대륙의 스케일은 정말 어마어마 하다.

천단공원 (天壇公園)은 북경시(베이징시) 충웬구에 있는 사적으로, 명청시대 중국에서 군주가 제천의식을 행하던 도교 제단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연례행사로,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공원내에 있는 천단(天壇)은 고대 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대지면적은 약 273만 ㎡로 고궁인 자금성의 4배나 된다.이곳 천단(天壇) 가는 입구 공원은 중국인들의

휴식과,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이곳은  1961년 국무원에서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를 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다.
예전의 천단공원은1406년 공사를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이 되어졌다고 한다.
영락제는 자금성을 건설했던 황제로, 완공 당시에는 천지단이라고 불렸고, 1530년 가정제 9년에는 3개의 제단을 더 추가함으로서 천단이라고

불리게 됬다고 한다.동쪽으로는 일단을,북쪽으로는 북쪽으로는 지단을, 서쪽으로는 월단을 추가하였고,현재의 규모로 확장이 되어진것은 청대

의 건륭제 연간이다.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영프 연합군, 1900년 북청사변으로 8개국 열강의 점령이 있었는데,1914년 위안스카이가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천황을 칭하며, 찬단에서 대제를 열었다.이는 위안스카이 자신이 삼황오제로부터 내려오는 중국 전통 황조의 계승자임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1918년에 천단공원으로 개관하고,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어졌다고 한다.
중국 역사의 대해 깊게 들어가면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한것 같고 이런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북경 798예술거리(北京798藝術區)

북경 798예술거리는 북경 조양구 동북쪽에 있는 주선교 718번지 지역에 있다. 중국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이 지역에 있던

공장들을 2000년대 초반 베이징 외곽으로 옮기면서 건물이 텅텅 비기 시작하자, 예술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창작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798예술구의 시작이었다. 군수공장이었던 까닭에 건물은 명칭도 없이 그냥 번호로 불렸다. 예술가들이 처음 전시장을 차린 곳이 '798' 번호를

단 공장이었기 때문에 798예술구가 된 것이다.798예술구는 자생적인 공간이었다. 싼 임대료 덕분에 젊은 예술인들이 몰리면서 카페, 갤러리,

서점 등이 따라 들어왔고,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자 정부는 꽃 심기, 도로 정비 등으로 환경을 가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60만㎡

의 드넓은 부지에 화랑, 작업실, 카페 등으로 개조한 건물 400여 동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처음에 소문을 듣고 하나둘 찾아오던 관광객들이

2009년에만 150만명을 돌파, 명실상부한 예술, 상업, 여행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북경 798예술거리는 2003년 미국 <타임>지에 22개의 세계

 

 

도시 문화예술 센터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미국 뉴욕에 소호(예술가들의 거리)가 있다면 중국 북경에는 798예술구가 있다.

북경 대산자(大山子)에 위치한 798예술구는 북경올림픽 개최무렵 예술특구로 화려하게 변신해 각종 언론매체의 관심을 받으며 내외국인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는 곳이다.798예술구는 원래 군수산업기지로 "798"이라는 명칭은 산업기지내의 한 공장의 번호에서 유래됐다.

특히 일본에서 돌아온 예술가 황예가 최초로 798공장건물을 임대받고 2001년 10월 화랑개장 기념전시회를 열면서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798예술구가 형성됐다.값싼 임대료 덕분에 예술인들이 몰리고 카페, 화랑 등이 들어오면서 798예술구는 음산했던 페공장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정부는 2006년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하고 꽃심기 , 도로정비 등의 환경정비사업을

펼쳐 일부 가동되고 있는 공장들과 예술거리가 공존하는 중국의 현대미술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60만평방메트의 넓은 부지에 전문화랑, 카페 등으로 개조한 독특한 인테리어의 건물 400여동이 빼곡이 들어차 관광객들이 2009년에만

150만명을 돌파, 명실상부한 예술, 상업, 려행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또 798예술구는 타임, 뉴스위크, 포춘지 등에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 상징성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예술도시로 선정되면서 "창의지역(创意地区)

문화명원(文化明园)"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북경의 문화아이콘으로 상징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제1회 대산자국제예술제를 시작으로 매년 봄 다른 주제로 축제가 펼쳐지고 규모 또한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798예술구의 발전

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시회 등이 열려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798예술구의 대표적인 화랑은 벨기에 컬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대형화랑 UCCA로 매년 이곳을 찾는 관람객수만 15만명에 달한다.

그림이나 사진 전시회 이외 에도 끼 있는 내외국인이 798예술거리를 찾아 기묘한 행위예술을 선보이고 관객들이 직접 창작체험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단순히 눈으로만 즐기는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화랑등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중국미술의 현주소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대단한규모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4500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수있는 식당.

 

 

 

 

엄청난 규모의 후론트앞.

 

 

 

 

천단공원에 들어서며.

 

 

 

 

천단(天壇)의 기곡단(祈穀壇:계단)과 기년전(祈年殿) 전경 

이곳 천단(天壇)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1406년에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되었다.영락제(永樂帝,1360,5,2 ~1424,8,12)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는 자금성을 건설했던 왕으로, 이곳의 건설 당시는 천지단(天地坛)이라고 불렸고,1530년 가정제 9년에는 3개의 제단을 더 추가함으로써 천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쪽으로는 일단(日坛)을, 북쪽으로는 지단(地坛)을, 서쪽으로는 월단(月坛)을 추가하였다.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 것은 중국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95)인 건륭제 [乾隆帝) 때 이다. 이곳은 1918년에 공원으로 개관하고,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3층의 원형 기단 위에 우산을 편 듯한 3층 지붕인 원형 건물이다. 높이 38m, 직경 30m이다. 이곳에서 황제가 오곡풍년의 제례를 행하였다.

기년전의 3층 지붕 기와는 유약을 칠한 유리기와라고 불리는 것인데, 여기의 기와 빛깔은 검정이 섞인 듯한 푸른빛이 쪽빛보다도 더 푸르다.

기년전의 지붕은 멀리서도 그 빛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눈에 띈다. 이 건물은 대들보나 마룻대를 사용하지 않은 중국의 독특한 건축방법이

쓰였다.

 

 

 

 

 

 

 

 

 

 

 

 

 

 

 

 

넓고 큰 정원에는 조경이 참 잘되있다.

 

 

제사지낼때 사용하는 신패등과 갗은 도구를 보관하는 황궁우의 모습.

 

 

 

 

 

 

 

 

 

 

 

 

 

 

 

 

 

 

 

 

 

 

호주머니에 넣고오고싶은 작은차가 서있다.


 

예술거리로 들어서면 벽에 그림들이 반긴다.

 

 

 

 

 

 

예술거리 이름처럼 거리에 조형물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