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여행

2024. 10. 09~13일 베트남여행 다낭 여행 (2)

소담1 2024. 11. 18. 13:42

2024년 10월10일 (목요일)

다낭여행 두번째날.

 

오행산 동굴체험을 끝내고 다음은 바구니배를 타러간다.

페키지 여행으로 오니 이것저것 좋은것은 모두 추가요금을 내야하는 선택관광으로 선택관광을 안할경우 다른사람들 투어가 끝날때 까지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며 남편은 그냥 선택관광 모두를 하자고 한다. 출발할때 여행사에서 한3가지정도만 하면 된다고 했는대 여행비가 싼대신 교묘히 선택관광에서 폭리를 취해 이익을 남기는 여행사 다음여행때는 풀 옵션으로 오자고 한다. 지금 타려고 하는 바구니배도 선택으로 40불 (약55,000원)인데 자유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보면  한화로 약 9,000원이라고 쓰여있다. 돈을 떠나 입구에 들어서니 한무리의 남자들이 한국노래 "내나이가 어때서"를 신나게 부르며 흥을 돋군다. 바구니배에 올라 참 한국사람들이 많이도 오는구나 하며 우리도 신나게 즐길준비를 하며 출발을 한다.

 

이 출입문을 지나 바구니배 출발지점에 도착을 한다.

 

다낭의 바구니배 체험은 매력적인 관광 활동 중 하나로, 쿠라클 바구니배(원형 나무 배)를 타고 강을 유유히 떠다니며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호이안 인근 코코넛 마을에서 진행되는 바구니배 체험은 자연과 현지 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어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부두에는 정말 많은 바구니배들이 있고 저희가 타면 직원분께서 엄청나게 높은 텐션으로분위기를 띄워준다.정말재밌는 시간이였고 한국 노래도 계속 불러주면서 영차영차 빨리빨리를 외치며 흥겨워한다 그리고 그분들은 엄바구니배를 모는 고수여서 바구니배 운전을 정말 잘 하더라구요.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만난 어느 지인은 이곳 호이안과 다낭을 일러 베트남 속의 한국이라고 표현했었다돌아다니는 사람들 셋 가운데 하나는 꼭 한국인일 것이라는 가이드의 귀띔도 있었다그런데 그 농도가 이곳에서 한층 더 깊어졌다들려오는 언어가 오로지 한국어뿐인 것이다배와 배 사이에 주고받는 언어는 물론이고 뱃사공이 부르는 노래도 전부 한국노래 뿐이다.

긴 수로를 따라 90%이상이 한국사람들을 태운 바구니배가 줄지어 지나간다.

원시림처럼 손때가 묻지않은 수로의 식물들.

바구니배 고수의 돌리기 모습. 한쪽에서는 노래자랑이 한창이다베트남 뱃사공이 한국 노래를 불러주는데 흥을 돋우는 사람들 역시 한국인들뿐이다익숙한 노랫가락이 흥에 겨웠던지 일부는 뱃사공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흥에 겨운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1달러 짜리 한 장을 내놓는다.

 

통배는 일반 목선이나 기관선보다 멋있고 신기하고 그배를 타는 시간에는 즐거웠고 흥을 돋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너무 힐링 됐다.중간중간에 심심하지 않게 공연 코스도 있어 다함께 구경 하며 흥에겨운 분들은 올라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같이한다.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강을 가로질러 즐거운시간을 보내고 하선을 하며 1불정도의 팀을 주고 내린다.생각보다바구니 배가 위험하지도 않고 아늑하고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흥여넘치고 활기참 모습을 보고왔다.

 

바구니배 투어가 끝나고 나오면 여행사에서 준비한 망고를 한팩씩 주어 맛있게 먹고 다음 출발지로 출발을 한다.

호이안을 향해 얼마쯤 더 달렸을까 버스를 멈추더니 이번에는 전동카를 타라고 한다. ’유람선 선착장이 잇는 도자기 마을까지 전동카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다그러고 보니 선택관광 일정에 전동카 체험이 포함되어 있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눈요깃거리보다는 그저 전동카를 타보는 데다 의미를 두었던 모양이다

바구니배를 타고 다음장소로 이동하기위해 버스를 타고와 길이좁아서인가 카트를 타고 한참을 간다.

작은 초등학교에는 예뿐아이들이 놀고있다. 참 많은 어린이들 우리나라 초등학교와 대조되는 많은 아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호이안 구도심으로 가기위해 소음도 심하고 매연도 심한 목선을 타고 투본강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는 목선들.을 타고 간다.다낭에서 남쪽으로 35km가량 떨어진 호이안은 지금은 투본강을 끼고 있는 작은 구도시지만, 15~19세기에는 해양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 유럽 상인들이 상업과 문화 교류를 활발히 펼치던 국제 무역항이었다.
 하지만 다낭이 1787년 응우옌 왕조를 세운 자롱 황제가 프랑스와 조약을 맺고 할양하며 점차 성장했고,
19세기 다낭으로 무역항이 이전되며 200년이 지난 현재 과거 해양 실크로드 거점의 영광을 담은 도시가 됐다.

 

도자기마을에서 보트를 타고 투본강 하구의 호이안 올드타운(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호이안은 야경을 보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 조절을 해서 도착했다. 이곳 호이안은 예전부터 굉장히 번성한 항구도시로 입지상으로 보면 무역풍으로 만나는 곳이 호이안 이였고, 여러나라의 인종들이 모여 들면서 무역의 거점으로 커져간 도시였으나, 점차 배들이 커지고 모터가 생기면서 항구의 역할은 다낭쪽으로 옮겨가고 호이안은 항구도시의 역할을 잃으면서 쇠퇴를 하기 시작하였다.

 

호이안

 다낭에서 30쯤 떨어진 남쪽, ’꽝남성(Quảng Nam/ 廣南省)‘의 해안평야를 가로지르는 투본강(Sông Thu Bồn/ 瀧秋盆)‘ 하구에 있는 호이안은 중세의 시간이 걸음을 멈춘 곳이다. 1619세기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했지만 투본강의 퇴적작용으로 수위가 낮아져 큰 배가 들어올 수 없게 되자 무역항의 지위를 다낭에 넘겨주고 말았다덕분에 베트남전쟁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이제는 작은 항구도시로 전락한 호이안의 특별한 매력은 바로 옛 번성기의 풍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런 건축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참고로 이곳 호이안은 지난 달 CNN이 선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시아 도시’ 1위에 꼽히기도 했다해당 지역의 건축이나 아름다운 풍경도시에 녹아든 문화적 특징 등을 기준으로 리스트를 선정했는데이곳 호이안은 사진작가와 미식가건축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라는 평가가 있었다또한 올 7월에는 세계적인 미국의 여행 잡지 트래블 앤 레저(Travel Leisure)’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가운데 1위에 꼽히기도 했다구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설문이 경치·관광명소·문화·음식·친근감·쇼핑·비용대비 가치 등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지표들을 포함하고 있다니여행객들이 이곳 호이안을 얼마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결과라 하겠다. 

 

 투본강변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탄다이게 소위 말하는 투본강 크루즈그러나 말이 크루즈지 통통배 수준이다.

투본강을 따라 20여분 간 물살을 가르고 달리다 보면 드디어 고대하던 호이안 여행의 중심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호이안 올드 타운에 입성하게 된다.

제일먼저 씨클로(자전거를 개조한 이동수단)체험을 했다. 단체 패키지여행이라서 씨클로 가격을 흥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부터 씨클로를 타고 구시가지를 한바퀴 도는 코스인데 씨클로 자체가 비스듬하게 뒤로 젖혀지게 되어 있어 좀 거만하게 타는것이라 한다. 더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와 그나마 좋았다.

 

 

씨클로는 호이안의 옛도심을 가로질러 약15분정도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인력거 비슷한것으로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달리며 문화와 상가등을 투어하는 상품으로 한국사람이 약 95% 이상 이용하는 상품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작은 덥고 습한 작은 공원에서 30분이상을 기다려 우리차례가와 탑승을 한다. 한번 출발하는대 약 30대정도가 한꺼번에 출발을 한다. 시클로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교통수단으로, 자전거와 리어카가 결합된 인력거라고 보면 될것같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호이안 올드타운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호이안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 다낭 기준 남동쪽 방향으로 30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2018년 기준 150,000여명이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예전부터 참파 왕국의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으며 이는 응우옌 왕조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5 ~ 18세기는 호이안의 황금기로 중국, 일본, 서양에서 각종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했다. 그러나 19세기말 이후로 상황이 변했는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인근의 다낭을 식민지의 주요 거점도시로 성장시켰고, 베트남 전쟁때에는 미군의 공군기지와 해병대 사령부가 다낭에 들어서는 등 다낭이 중요한 거점도시로 빠르게 성장해버리면서 상대적으로 호이안은 쇠퇴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이유로 과거 번영했던 무역항 시절의 모습이 잘 보존될 수 있었고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베트남-프랑스 절충 방식 근대건축물 다수가 있다.다낭 근처에 있는 역사도시란 점에서 다낭 북서쪽의 후에와 겹치는데, 후에는 과거 수도였던 곳으로 현대적 중소도시에 궁전, 왕릉 등이 많이 있는 분위기이고 반면 호이안은 후에보다 더 작은 마을이 옛 모습으로 보존이 잘 된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가깝다.

 

진기 (進記) 고택

씨클로에서 내려 처음 간곳은 떤키(tan ky)고택이다. 이 고택은 18세기 말경 투본강을 중심으로 외국무역을 하던 무역상인 이었던 떤키가 지은 집으로  떤키의 뜻은 '발전하는 상점'을 의미하고 있어 이는 사업으번창을 의미하는 주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호이안은 베트남과 일본중국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들이 많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곳 탄키 하우스인데, 18세기 호이안의 부호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관광객들에게는 약재와 차실크 등을 판매하던 1층만 개방되어 있다. 2층은 현재 그의 7대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기(進記)라고 쓰인 오래된 건물
그들 발음으로는 탄키라는 티크나무로 만든 건물로 들어갔어 컴컴한 건물에 반짝이는 티크(침향목) 나무 기둥이 특이했다. 그런데 그곳에 작년 이맘 때  홍수가 나서 물이 우리 키를 넘었다고 한다. 역대 침수됬던 수위를 잘 표시해 놨다.

옛날 아주 크게 무역을 하는 무역상의 건물로 그때 사용하던 집기들이 잘 정리되있다.

 

역대 수해를 입었을때 수위가 표시되있다.

강변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구시가지 투어가 시작된다. ‘응유엔 타이(Nguyễn Thái)’ 거리와 함께 호이안 구시가의 중심거리로 꼽힌다는 트란 푸(Tran Phu)’ 거리가 아닐까 싶다탄키 하우스와 광조회관은성회관복건회관금산사중화회관내원교 등의 볼거리들이 트란 푸 거리에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호이안의 중국인 거리였던 쩐푸 거리를 걸으면 거리 전체 분위기에서 중국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특히 광조회관, 중화회관, 복건회관, 조주회관, 해남회관 등의 화교회관의 존재는중국 출신지별 상인조합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중에 광조회관을 방문했다.광조회관은 중국 광저우에서 온 상인들이 1885년에 지은 회관으로화려한 붉은 기둥을세워 만든 입구에서부터 중국만의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과거엔 중국의 무역상이나 항해사들이상거래를 하거나 휴식하는 공간으로 자주 사용됐다. 최근엔 중국 동포들의 향우회 장소나 조상들에게 제를 지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회관은 상인들의 염원을 담아 기둥과 지붕 곳곳에용과 봉황 조형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광조회관을 들어서면베트남을 상징하는 화려한 용의 형상이익살스럽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당 앞에도 도자기 파편조각으로 잉어와 용의 형상을 만들어 두었다.

 

광조회관은 관성대제(關聖大帝)와 천후성모(天后聖母)도 모시고 있다관성대제는 삼국시대 장군 관우를 말하고천후성모는 바다의 신 마조(妈祖)를 말한다사당 한 가운데 관우상이 있고좌우에 흰말과 붉은 말이 있다붉은 말이 그 유명한 적토마다관우는 안타깝게 죽었지만 아시아 전역의 사당에서 숭배되는 신이 되었다.

 

호이안 광조회관 ( 광동회관 )
1786년 광동출신 화교 상인이 지은 회관, 상인들 모임장소였다고 한다.삼국지 재물의 신 관우, 해신 마조 등을 모신 사당으로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 벽화.관우를 모신 관우전.작은 중국 분위기.중국 본토에서 건물을 만든 후 호이안으로 이동 완성.천정에 매달린 대형 향들.회관 뒷편에는 연못, 벽화, 등이 아름답고 그려져 있다. 

 

정원 관우의 발을 잡으면 재물의 운이 있다고햐 까치발을 하고 발을 잡아본다.

사당 안으로 들러가니 화려하게 장식되있고 제단에는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는데 특히 바다의 신 티엔허우를 모신 것으로 유명하다.

내원교를 건너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 내부를 돌아보고 나온다.

내원교.

일본 특유의 단아한 매력이 있는 다리. 베트남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인데 이 다리를 기점으로 중국 상인동네와 일본상인 동네가 나눠어 졌다.다리 중간에 작은 사원이 생기면서 내원교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호이안 올드타운의 상징적인 장소로  불빛이 들어오니 제법 분위기가 멋지다.

내원교(來遠橋)는‘멀리서 온 통행인을 위한 다리’라는 뜻이라고 한다.베트남 화폐 2만 동 뒷면에 그려질 만큼호이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다.1593년 일본 상인들이 건설한 이 다리는다리 양쪽에 있던중국 상인 마을과 일본 상인 마을을연결했다고 한다.

 

 

 

호이안은 짙은 색의 목조 가옥이 줄지어 있고, 이끼 낀 기와지붕과 한자 간판,노란색의 벽과 그 벽을 덮으면서 자라는 초록의 잎,거기에 형형색색의 등불이 호이안 특유의 색의 대비를 만들어냈다.게다가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없다.대신 시클로와 자전거가 달리고사람의 물결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호이안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야경(夜景)이다호이안의 야경은 축제를 연상케 할 정도로 등()의 향연이었다거리나 시장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강()에까지 온통 등으로 치장되어 있는 것이다다른 곳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특별한 광경이라 하겠다.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내원교를 건너 일본식 건물과 중국식 건물을 돌아보고 날이어두어 지길 기다렸다 소원배를 타가위해 강가로 나서 작은 목선을 기다리면서 바라본 투본강은 이미 등불 물결이었다.배마다 비단으로 만든 등을 달아 빛을

밝히니그 빛이 강에 비치면서 오색빛 물결이 일렁인다. 배에 오르면 소원을 담아 띄워보내라고 사공이 작은 소원을 담은 사각종이 상자에 켜진 촛불을 하나씩 준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강에 조심스럽게 띄워보낸다.

 

강 중간 정도로 이동하면 사공이 등불을 띄우라고 하나씩 준다.종이로 만든 박스 안에 작은 초가 들어 있어 불을 붙이고

소원을 담아 강에 띄워 노낸다. 강가에는 수많은 종이박스와 타다남은 초등이 굴러다닌다. 하나의 공해가 되있어 씀쓸하기도 하다.

 

이젠 어둠이 깔리고투본강 주변의 식당과 카페의 불빛과 등불이강에 비치면서 더 휘황찬란해졌다.

 

호이안의 밤풍경은 황홀하다날이 저물면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등불이 켜지고 야시장도 열린다말 그대로의 불야성이 펼쳐지는 것이다이때쯤이면 강가에 놓아둔 식탁도 여행객들로 가득 찬다식탁 옆의 거리도 사람들로 빈틈없이 북적거린다행여나 일행을 잃을까 손 붙들고 다녀야 할 만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