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산행

2019. 12. 25일 교동, (연산군유배지, 화개산. 대룡시장)

소담1 2019. 12. 30. 19:55

 

여행일자 : 2018년 10월 9일 화요일

여행장소 : 강화 교동도 (연산군유배지.화개산,대룡시장)

여행인원 : 남편과 둘이서

 

교동도(喬桐島)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섬.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한다. 면적 46.90㎢.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경 126°16′∼126°21′, 북위 37°45′∼37°00′에 위치한다.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연백군이 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명칭 유래 고도가 매우 낮은 섬으로 높이 0∼10m의 지역이 섬의 3분의 2를 이루고 있으며, 마식령산맥서단에 해당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강화군에 속하게 되면서, 개화·수정의 두 면을 두었다가 1934년 두 면이 교동면으로 통합되었다. 인구는 2009년 5월 현재 교동면 인구는 3,132명이고 세대수는 1,389호이다.6·25전쟁 이전에는 4개의 정기연락선이 있어 육지와 서해도서가 자유롭게 연락되었으나, 전쟁 이후 매우 불편해졌다. 2014년 교동대교가완공되어 강화도와 연결되었고,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연산군 유배지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교동도는 서해 북단에 위치한 섬,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세워졌는데 바로 유명한 교동 향교다, 화개산 자락 연산군유배지가 새로조성됬다.연산군은 성종의 큰아들로 성종7년(1476년)에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두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이 광폭함이 드러나자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 하는 중정반정이 일어나 (1506)년 왕직을 박탈 당하고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그해 강화 교동에 묻혔다, 부인 신씨가 연산군 무덤을 강화에서 옮겨 달라 청하여 친정고향인 지금의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장하였다. 그당시 경기도 양주군 이였음 폐위되어 연산군으로 강등 연산군은 폐왕이 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쫒겨났다, 실록에는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폐위된지 두달만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었다, 그의 치세는 개국 100년의 조선조에 한 시대의 획을 긋게 하여, 이후 50년은 사화라는 유혈극이 잇따라 일어난 선조이후 정치세력들이 붕당으로 갈라지는 계기가되었다, 당파 대립으로 .인해 국력은 소진되었으며, 임진 병자 등의 국난으로 국운은 쇠퇴하였다,19세에 조선 10대 왕에 즉위한 연산군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인명살해와 실정으로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어 1506.9.2.(음력) 교동으로 유배되어 두 달 만에 역질로 죽었다.교동읍성 동문안의 읍내리에 부근당이 있는데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탱화가 걸려있다.그 유배지 또한 섬 안에 세군데나 될정도로 분부하다.그중 유력한곳이 교동읍성 내, 고구리 영산골과 2009년에 세운 비석(연산군 잠저지)이 있는 곳(읍내리)이다. 그 외 강화도에 유배온 유배온 왕으로는 고려의 희종(1181~1237)과 우왕, 창왕이 있다.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세종의 3, 단종11453)을 시작으로 임해군(선조의서자, 광해군의 친형,1609), 영창대군, 능창대군(인조의 동생,1615), 광해군(1636,1637 제주행), 폐세자 빈 박씨,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원범(철종, 1844) 및 그의(영평군), 그리고 이준용(고종의 형,1895)이 교동에 유배 되었다.고려 때부터 왕과 왕족은 기록상 23명인데, 그중 14명이 유배지에서 살해 또는 사사 당했고, 일부는 자살하였다.

 

교동 화개산화개산(華蓋山)은 교동도에서 제일 높은 해발 259.6m로 교동도의 주산 이다 나머지 산들은 모두 나지막 한데 봉황산은 75m, 율두산은 39m, 고양이산은 35m, 수정산은 75m라 하니 화개산 이야말로 우뚝 솟은 산이라 할수 있다 화개산 정상에 올라 보니 동쪽으로 바다 건너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어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 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교동 대룡시장인천 강화군 교동도와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6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철조망 너머 북한의 모습을 육안으로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이다.섬 북쪽 끝에 연백 출신 어르신들이 와서 10 리도 되지 않는 바다 건너편을 한참 바라보다 철책을 손으로 만지며 망향의 한을 달래고 등을 돌린다.대룡시장은 태고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는전통시장이다.한국전쟁 때 교동도에는 3명의 연백군민 중 1만여 명이 피란 와 60년대에는 교동 인구가 12천명까지 달한 적이 있다.피란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동도에 머물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분단현실이 결국 그들을 실향민으로 만들었다.실향민 상당수는 교동도를 떠났지만, 고향을 마주보고 싶은 사람들은 섬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궜다.교동도에서 농토가 없는 실향민들은 생계수단으로 장사를 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장마당이 지금의 대룡시장으로 커갔다. 40곳 남짓한 점포가 들어선 시장건물 대부분은 한국전쟁이후 세워진 것이다.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교동에는 장터가 없었다교동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이어서 그곳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교동도에서 연백군은 배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따라서 연백과의 교류가 빈번하였고 혼인관계도 성하였다고 한다. 60여 년간 대룡시장은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으며 지금은 시장을 만든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시장의 규모도 상당히줄어들었다.세월이 흐르다보니 대룡시장의 빈 점포는 점점 늘어나 시장을 보존하고 활성화할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동 대룡리 시장에는 전쟁으로 분단된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실향민과 북쪽 고향이 그리워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4대에 걸쳐 사는 가정도 있다.이발관, 정육점, 잡화점, 시계방, 약방, 양복점, 신발가게, 철물점, 다방, 구명가게와 비좁은 골목 등 저마다 수십 년의 연륜을 풍기는 낡은 가게에서 정겨움이 묻어나고 한편 모든 사물이 과거시간대에 멎어있는 것 같다.

정족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온수교회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오늘 성탄절 예배가 11시부터 시작되 차들이 2중3중으로 주차되있어 꼬박 1시간여를 못빼고 있다 12시가 넘어서 예배가 끝나 오늘예정했던 평화전망대는 포기를 하고 교동으로 향한다. 그전에 왔을때는

교동대교 전방 해병대초소에서 민통선 출입 신청서에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어주고 차량 출입증을 받았는대 이제는 얼굴만 보고 출입증을 건내준다. 지난2014년7월에 개통한 교동대교를 건넌다.한번왔던 길이라 낮설지 않은 길을 달려 저수지도 지나고 면사무소 앞을지나 조금더 가니 좌측으로 연산군유배지 입간판이 보인다. 좌측으로 유배지 주차장으로 올라가니 대형차와 소형차주차 장이 잘만들어져 있다 그전에는 이곳에다 주차를 하고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200m정도를 걸어 올라 갔었는대 유배지 입구에 차를7~8대정도 세울만한 공간이 있는것을 알았기에 그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간다.. 그앞에서 연산군유배지 150m 이정표를 지나 인도포장길를  따라 올라간다. 밤나무가 많이있다. 가을에 왔었을때 토종밤을 많이 줒어 갔었는대 하며 "연산군유배지(위리안치)" 큰표지석에 도착을한다.남편에게 위리안리가 뭐야 하니 검색을 해본다. 중죄인에게 내리는 형벌로써 울타리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엄벌이라고 알려준다.표지석앞에서 사진을 찍고 잘지어진 초가건물앞으로 다가간다. 교동유배문화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로 들어가 조선시대의교동, 교동에유배된 고려왕 고려시대의 강화등 여러가지의 자료들이 벽에 붙어있다. 연산군은 조선9대왕인 성종과 폐비 윤씨에게서 태어났다. 조선의 두번의 반정(무호사화,갑자사화)중 처음으로 폐위되 강화도에서 배를타고 더들어가는 교동도에 유배되 왔었다. 자료에는 연산군외 양평대군,임해군등이 유배되 왔다고 한다.문화관을 나오면 끝쪽으로 작은 초가가 보인다. 그옆으로는 호거암거를 끄는 소와 유배되오는 함거속에 연산군 모형과 호송하는 포졸의 모형이 보인다.싸릿문을 들어서 유배되 식사하는 모습의 조형물과 초가앞에 내시와 나인들의 조형물까지 돌아보고 산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이쪽에서도화개산에 오를수 있냐고 하니 길을 안내해준다. 산쪽으로 들어서 잘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서 우측으로 다시 놓여진 긴 목책계단을 따라 언덕에 올라선다.화개산정상0.5km,연산군유배지0.5km,이정표앞 고개에서 우측으로 다시 시작되는 목책계단과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 화개산정상0.2km,효자묘자리50m,면사무소1.4km이정표앞 쉼터와 화개약수앞을 지나 조금더 올라서면 효자묘 설명판이 묘지앞에 서있다.설명판을 대강 읽어본다.

 

병환중인 홀아버지를 모시고살았던 효성깊은 신씨라는 젊은이가 부유한가정의 자식대신 군사로 징병되.....를 보다 다시 시작되는오름길을 올라 화개산봉수 이정표를 지나 조금더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 나온다. 높은 산불감시초소와 팔각정자 그리고 투명유리에 주변 섬들의 이름이 써있는 안내도에서 북쪽으로 크고 네모난 정상목앞으로 다가간다. "화개산 해발259.6m"와 인증하고 뒷쪽아래 고구저수지와 넓은강건너 북한땅을 바라보지만 안개로 인해 송악산 꼭데기 봉우리만 보일뿐 강도 바다도 모두 안보인다. 반대편으로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쪽과 볼음도 주문도 아차도쪽을 흐리게 바라보고 올라왔던 길로 내려온다. 올라갈때 30분 정상에서 10분정도 머물고 하산20분 꼭 1시간이 걸려 화개산을 다녀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오늘도 향교와 읍성은 아쉽지만 다음기회로 미루고 대룡시장 잘만들어진 주차장에 도착을한다. 대룡시장은 6.25전쟁때 북쪽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종전이되 고향으로 되돌아갈수 없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인 연백시장을 본따 만든 골목시장이다.여년간 교동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실향민1세들이 나이도 들고 돌아가시고해 급격히 규모가 줄어들었다가 2014년7월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많은사람들이 찿아오고 모 방송국 1박2일팀이 촬영하여 방송하고나서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유선 교동제비집 이라는 안내소로 들어가본다.1층에는 관광안내 자전거대여 교동신문만들기 농산물 판매대가 있고 2층에는 카페와 전시실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잠시돌아보고 "어서오시겨 대룡시장"높고큰 입구문을 들어서 갱냉이 튀기는 사람과 주변에 귀막고 서있는 아이들 벽화와 옛날포스터들 그리고 오래된 초라한 상점들과 떡집 이발소 다방 호떡집 고무신가계  시계수리점 을 차례로 돌아보며 교동꽈베기 한개에 1500원을 주고 사 먹는다 작년에 왔을때 1000원이였는대 그새 500원이 올랐다. 대룡시장도 다녀간지 1년도 안됬는대 많이 변했다. 상술에 찌들고 옛날 그모습이 점점 퇴색되고 신식건물이 들어서고 시장중간에 카페가 들어서고 옛 정취가 점점 살아지는 모습이 안탑깝다. 그시대 고생하던분들이 한분 두분 떠나시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그냥 그모습으로 오래 남아있길 바란다.시장구경을 한다.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많은 사람들로 복잡한 골목을 거날며 수지큐-우 카페와 미용실 세탁소 옷가계 교동은혜농장 까지 돌아보고 어릴때 보았던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형 까지 빠르게 돌아보고  인터넷에 검색하고온 복고풍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옛날맛 그대로 맛볼수있고 모든것이 푸짐하게 제공하는 인심좋은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대룡시장을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한다.교동대교를 건너 출입증을 반납하고 막히지 않는 도로를 달려 김포로 건너와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연산군 유배지 입구.

 

 

 

 

                    유배지 올라가는길.

 

 

                      유배지 문화관

 

 

 

 

                    표지석앞.

 

 

 

 

 

 

                     문화관에 붙어있는 설명.

 

 

 

 

                  연산군 유배지 위리안치 모형.

 

 

 

 

 

 

 

 

                        유배당시 타고간 수레의 모형.

 

 

 

 

 

 

                         위리안치소 내부의 연산군 모형.

 

 

                       위리안치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유배지에서 화개산 올라가는 계단.

 

 

 

 

                          화개산 올라가는길.

 

 

 

 

 

 

                        능선삼거리.

 

 

 

 

 

 

 

 

                        교동 식수원인 저수지

 

 

 

 

 

 

                      화개약수터앞.

 

 

 

 

                        효자묘앞 공터.

 

 

                      정상 올라가는 마지막길.

 

 

                       정상, 유배지, 화계사, 갈림길.

 

 

                      화개산 암각화.

 

 

                         암각화의 모습.

 

 

 

 

                       암각화에서 올려다본 화개산 정상.

 

 

                       화개산에서 바라본 석모도쪽의 풍경.

 

 

                        화개산 정상목.

 

 

                    안개위로 산모습만 보이는곳이 북한땅이다.

 

 

 

 

 

 

                       정상목뒤로 북한땅이 건너다보인다.

 

 

                    저수지와 바다건너 북한땅.

 

 

                    정상의 모습.

 

 

                     볼음도 주문도 아차도쪽 바다와 섬.

 

 

                     화계산에서 바라본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쪽과 오른쪽 석모도.

 

 

 

 

 

 

 

 

 

 

                      지붕은 태풍때 날라가고 기초만 남은 전망대.

 

 

 

 

 

 

 

 

 

 

 

 

                         유배지로 다시 내려와서.

 

 

 

 

 

 

 

 

                      교동대교를 건너러면 출입증을 받아 차앞에다 보이게 놓아야 한다.

 

 

 

 

                      대룡시장앞 로타리.

 

 

                          교동 제비집.

 

 

 

 

 

 

 

 

 

 

 

 

 

 

 

 

 

 

                                             대룡시장 입구.

 

 

                   뻥튀기 벽화.

 

 

 

 

                    대룡시장 전경.

 

 

                   대룡시장의 명물 꽈배기집앞.

 

 

 

 

                         맛은 있는대 천원에서 천오백원으로 올라 조금비싼 느낌이다.

 

 

 

 

 

 

                     시계방.

 

 

                        신발가게.

 

 

 

 

                     말뚝박기 놀이모형.

 

 

 

 

 

 

 

 

 

 

                      역대 대통령선거 포스터.

 

 

 

 

                     옛맛 그대로 음식을 만드는 조짜장집에서 점심.

 

 

 

 

 

 

 

 

 

 

                         교동대교를 건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