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장소 : 옹진군 연평도(延坪島)
여행일자 : 2019년 2월 3일 일요일
여행경로 : 당섬(연평바다역)-연평해전승비-연육교-등대공원-조기역사관-평화공원-연평면사부소-안보교육장-동진정-함상공원-선착장
여행시간 : 연평도도착 11 :30 ~ 연평도출발 17 : 00
연평도(延坪島)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번째에 있는 이 섬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곳으로서,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라 한다. 또한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연평도는 섬 전체가 안보체험장으로 연평포격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분단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연평도 평화기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와 같은 안보관광지를 걸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북쪽 둘레길 구간에서는 북녘 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연평도는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파시가 열려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때 청나라를 치러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잠시 들렀다가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 충민사에서 섬내 어민들이 오색만기를 내세우고 당굿과 배굿으로 북,징을 울리며 배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문화관광상품)를 매년 3월경에 지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조기섬 동상을 만나볼 수 있고, 전망대와 더불어 조기 역사관을 개관하여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연평의 지명은 연(延)이어 뻗친 땅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황해도 해주군의 관할 도서였으나 해방 후 경기도 옹진군 송림녕이라 칭하였다. 1950. 06. 25 이후 2개리(대수암리, 소수암리)는 이북에, 연평리는 남한에 위치하게 되었고 현재는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2020년 8월 현재, 연평도는 유인도서 2개와 무인도서 5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유인도서 2개(대연평도, 소연평도) 가 서해5도에 속해 있으며 총면적은 7.41㎢, 6개의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고, 현재 약 2,06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연평도는 인조 21년 임경업 장군이 청국에 가다 연평도에 들러 조기를 발견하면서 조기잡이가 시작되었고, 이후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으나 현재는 서해 제일의 꽃게잡이 지역으로 유명하다. 또한, 연평도는 서해5도 중에서 북방한계선(NLL)과 가장 인접해 있어, 1970년대부터 북한의 도발이 자주 발생해왔다. 연평은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 그리고 2010년 연평 포격 사건으로 눈물과 아픔이 함께하는 공존의 장소였다. 연평도를 맞이하는 관문인 당섬선착장에는 실향민의 애환과 향수를 달래고자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당섬공원에는 연평해전 전승비가 국토를 수호하고 있다. 마을중심지는 연평 포격 당시의 생생한 흔적과 아픔을 기억하는 그대로의 섬 박물관이 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생생한 아픔의 기억을 연평 안보교육장에서 볼 수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
연평도 북한의 도발 포격사태는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북한군이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한 사건이다.당시 쏜 포탄은 바다에 떨어진 것까지 합치면 170발이 넘는다. 이런 무자비한 공격으로 서정우 하사 등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이나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에 연평도 주둔 해병대가 K-9 자주포로 대응사격을 했으며 90여발의 포탄을 쏴서 공격했다.
북한군 사망 10여명, 중경상 30여명의 피해를 당햇다고 한다. 아런무자비함 공격을 지시한것은 김정은 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한것이다.
그리고 체제유지를위해 긴장감을 조성해서 자신의정권을 확고하게 하기위해 한것이다.
연평제1해전
1999년 6월 7일에서 11일에 거쳐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을 거듭하면서 남한 해군과 충돌을 지속하였다.6월 15일 오전 어뢰정 3척을 포함한 7척의 북한 함정이 남한 관할해역을 침범하였다. 남한 해군이 이에 맞대응하자 북한함정이 소총 사격과 25㎜ 기관포 발사 등의 공격을 해왔다. 남한 함정은 40㎜와 76㎜ 기관포로 응사하여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대형 경비정을 대파했으며 중형 경비정 2척 반파, 소형 경비정 2척 파손이라는 전과를 기록했다.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으나 30여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일부에 경미한 파손을 입었고 군인 9명이 경상을 입었다.
연평제2해전
1999년 6월 7일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 이후에도 북한 경비정의 NLL침범은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며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에도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다시 NLL을 침범했다. 이에 남한 해군은 참수리 357, 358의 고속정 2대를 출동시켜 대응기동과 경고방송을 하며 접근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은 갑자기 아무런 징후도 없이 참수리 357호에 85㎜포를 비롯한 모든 포를 동원하여 선제 기습포격을 하였다.측 함정 사이에는 즉각적인 교전이 시작되었고 남한 해군의 고속정과 경비 중이던 초계함 등이 교전에 가담하여 북한 경비정에 대응사격을 함으로써 10시 43분 북한 경비정은 퇴각했다. 교전결과 북한경비정은 외부갑판이 대부분 파괴되어 반파되었고 전사 13명, 부상 25명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 해군도 윤영하 대위를 포함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참수리 357 고속정은 침몰했다.
매년 추석과 설명절에는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연안여객선들이 무료로 운행을 하고있다.
지난 추석때에는 덕적도 비조봉에 갔었는대 이번 설명절에는 연평도를 가고싶어 일찌감치 예약을하고 안보체험및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올겨울은 비도 눈도 추위도 없는 포근한 날씨에 하루가 멀다하고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왔는대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비예보에 바람까지 분다고하여 혹여 취소되는것 아닌가하며 일기예보가 틀려주길 바라며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많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9시30분 인천항을 출발하는 배를 타기위해 일찍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준비를 하고 승용차를 가지고 나갈까 하다 오늘 많은 인파가 몰릴것으로 예상되 대중교통을 이용해 빗속을 달려 인천항 연낭여객 터미널에 도착을한다. 예상대로 많은 인원이 대합실에 몰려있다. 안개는 조금 끼였지만 배는 정상적으로 출발을 한다고 한다. 배표도 받고 정시에 출발을하여 인천대교도 통과하고 1시간쯤 갔을까 심한파도에 배는 흔들리고 뱃멀미 신호가 오기 시작을한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도 뱃멀미를 하고있다. 눈을 꼭 감고 고통을 이기려 힘을쓰는 사이 인천항을 출발한지 2시간5분만에 당섬(연평바다역)에 도착을한다. 인천에서 뱃길로 145KM떨어진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연평도는 북한 부포리에서 불과 10KM정도 떨어져 있고 바다위를 기차가 달리는것 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국이라 연평도라 부른다고 한다. 한때는 우리나라 제일의 황금조기어장으로 각광을 받았던 섬이고 눈물의 연평도라고 부르게된 사연은 1959년 사라호태풍이 불면서 수백척의 어선이 부서지고 많은 어부들이 생명을 잃은뒤 부터라고 하며 최근 2010년11월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더욱더 가슴아픈 섬이 되었다. 선착장에 도착을하니 비는 다행히 자자들었지만 안개와 바람이 심하게 불고있다. 바다역을 빠져나오면 "연평도에 오신갈 환영합니다" 입간판이 높이 서있고 그앞으로는 옛날 가수 최숙자씨가 부른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서있다. 길게 줄서 기다리다 인증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나오면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가기로 하고 연육교로 향한다. 물이 빠져 연육교 아래 교각과 그옆으로 나있는 오래된 세월교를 따라 1.3km에 이르는 연육교를 건너 삼거리에 도착을한다.삼거리에는 서해5도 특별경비단 건물이 있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연평리 면사무소가 있는 제일큰 마을이고 우리는 좌측으로난 해안도로를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안개로 인하여 바다도 바닷가옆 바위들도 흐리기만해 속이상한다. 한참을 언덕을 걸어오르면 작은 쉼터정자가 나오고 그곳에서 좁은 인도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위로 하얀 등대가 보인다. 이곳이 등대공원이다. 연평도가 조기어장으로 각광을 받자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들이 연평도앞 바다를 메우던시절 이등대가 배들의 길잡이로써 1930년 점등을 시작하여 황금어장을 비추다 1974년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일시소등하고 1987년4월 등대로써 용도가 폐기되면서 빛도 소리도없이 흥청거리던 지난세월을 회상하며 지금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등대를 한바퀴돌아보고 등대아랫쪽으로 내려와 조기역사관으로 향하다 넓은 평지에"조난어업자위령비"를 만난다. 세월의 무개를 이기며 힘겹게 서있다. 어업에 종사하다 세찬 바람과 풍랑에 떠밀려 희생된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위령비앞을 빠르게 지난다. 그리고 해변을 바라볼수있는 데크전망대앞으로 다가가 보지만 심한 안개로 아랫쪽 가래치기 해변도 북쪽의 북한땅도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로 들어가는 데크길앞에는 옛날 조기어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진 조기배모형 돗단배 한척이 서있다.조기섬 조형물을 지나면 2층으로된 조기역사관이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1층은 역사관이고 2층에는 누마루형태의 전망대가 있다. 입구앞에는 금색으로 만든 피아노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모습의 조형물이 있다. 이조형물을 설치하게된 계기는 2010년11월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하여 포격을 가하였고 제1.2연평해전이 평화로운 이섬에서 일어났다.이로인해 분단의 상처와 공포를 온몸으로 겪으며 시간이 흘러도 고통받는 주민을 위하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2011년9월17일 영화배우였던 부인 윤정희씨와 이곳을 방문하여 평화공원에서 공연을 해 잠시나마 음악으로 치유받은 주민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 조형물을 설치 했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등대공원 아래 평화공원(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시야가 좋으면 2층 전망대에 올라 빠삐용절벽도 몽돌해안의 기암괴석도 돌아보고 가고싶지만 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지를 않아 평화공원 입구로 내려가 쉼터정자와 체육시설앞 노래기념비와 눈물의연평도 노래비를 바라보며 전차와 헬기등 오래된 군수장비가 전시되있는 앞을 지나 평화공원으로 향한다.평화공원에는 전망대 연평포격위령탑,추모의벽, 전사자들의 흉상,염원의벽,미디어홍보관 군수장비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이곳은 1.2연평해전 교전장소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며 북한땅이 코앞에 있는곳으로 옹진군에서 연평해전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때 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잃은 장병들께 머리숙여 묵념을하고 한쪽에 설치된 쉼터에서 싸가지고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면사무소 소재지로 출발을한다. 비는 이제 끝이나고 안개구름도 점점 흩어져 시야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을한다. 평화공원에서 내리막 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다 폐주유소와 레미콘공장을 지나 아침에 지났던 삼거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해안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연평리마을로 향하며 연육교와 소연평도를 바라보며 대피호(2호)와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지나서 연평리마을로 진입을한다.
영평회관과 파출소 한국전력공사 남부리경로당을 차례로지나 좌측으로 보건지소와 면사무소 방향으로 들어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곧 새롭게 단장한 연평면 사무소앞에 도착하여 사진도 찍고 바로옆에 위치한 연평 초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바라본다. 연평포격당시 주민들이 대피했던 운동장과 대피소를 바라보고 안보수련원쪽으로 발길을 옮긴다.가는길옆 담장에는 2010년11월23일 포격당시 피해현장 사진들이 붙어있는 길을따라연평안보수련원 정문앞을 지난다. 그리고 곧 안보전시관에 도착을한다.폐허가된 민가3채를 포격당시 파괴된 모습으로 보존하며 지붕을 씌워 관리하는 안보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안보전시관은 10시부터 18시까지 관람을 할수가 있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한다. 포격2주년인 2012년11월23일 준공하였고 지상2층으로된 건물로 전시실과 대피소체험실등을 갖추고 있다. 평화롭던 마을에 북한이 갑짜기 포격을가해 부서진 대다수의 집들은 복구가 되였고 그중 가장많이 부서진 3채를 안보교육장으로 지정해 그때 당시의 참담함을 보여주고 안보의식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려고 이 교육장을 만들어 참상을 보여주고 교육하려고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처참하게 부서진 민가를 바라보며 깨끗하게 만들어진 2층 전시실로 올라간다. 전시실에는 포격전 상황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영상물을 시청할수있고 포격당시 우리군의 대응과 같은시간 북한군의 대응을 재구성한 영상물을 볼수가 있다. 그리고 벽면에는 산화된 우리젊은 해병용사의 생전에 웃는모습의 얼굴을 볼수있는 사진화면도 있다. 포격으로 주택과 시설물 주방용기 등이 파손된 파편과 잔해들를 그대로 전시한 급박했던 그때의 모습을 상상케하는 물건들도 단정하게 전시되있다.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방공호체험실이 운영되고 안보유적 보존과 희생자 애도,포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치유 그리고 안전한 나라만들기 체험교육등이 진행된다고 한다. 잠시동안이나마 둘러본 연평도안보교육장을 돌아보며 마음아파하며 이번 안보체험여행으로 연평도에 대하여 많이 알게되였고 아픔의 섬이였지만 이제는 평화의 섬으로 변한 연평도는 더욱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 되길 바라며 시계를 본다.배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가야하는대 아직 볼것이 많이 남아있다.(하편에계속)
건물 보수를 끝낸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
연평도까지 타고갈 배앞에서.
승선하면서.
연평바다역앞에 서있는 노래비.
연평바다역을 나와서.
연육교 입구에서.
썰물때는 연육교 하부쪽으로 길이생긴다.
평화공원으로 가면서 바라본 연육교.
등대공원 가는길.
지금은 폐기되 사용을 안하는 등대 앞에서.
조난어업자 위령비앞에서.
조기역사관앞.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조형물.
역사관 내부에서.
평화공원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흉상앞에서.
전사자 위령탑앞.
면사무소쪽으로 가는길에.
2호 대피호앞에서.
연평리 거리의 모습.
연평면 사무소앞에서.
연평 추,중,고등학교의 모습.
담에 붙어있는 포격 당시의건물 사진.
안보수련원 정문.
안보교육장입구.
북한의 포격으로 파괴되고 불탄모습.
민가피해 가옥을 안보교육을 위한 전시관으로 보존하고있다.
불탄 세간살이를 전시해 놓았다.
파괴된 민가.
지하대피소의 구급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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