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

서유럽여행 2일차( 바티칸, 바티칸박물관 )

소담1 2017. 10. 19. 22:29


바티칸성당

성 베드로가 64년 또는 67년에 순교한 뒤 네로(54~68) 황제 경기장(37년에 만들었다.)의 북쪽, 즉 바티칸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바티카누스 평원의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다. 지금 바티칸이 있는 자리는 그 옛날 공동묘지인 셈이다. 이후 2세기 중엽에 바로 그의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진다. 성경의 말처럼 ‘너를 베드로라 부르니 너 위에 내 성당을 세우리라, 너에게 천상의 왕국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노라’의 의미 그대로 그의 묘지 위에 성당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이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가 공인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9년에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성당을 세운다.
그 규모는 지금의 바티칸 대성당의 본당 규모 정도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분열, 게르만 족의 침입, 심지어는 826년경에 아랍인들까지 이곳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 당시 846년 현재의 바티칸의 벽, 즉 성으로서의 외벽이 쌓인다. 이 당시 교황은 이곳이 아닌 라테란 궁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후 아비뇽 유수 시대(1305~1377) 기간 동안 로마는 철저히 버려지게 되었고 새로이 교황권을 복구할 이유도 생기게 되었다. 율리우스 2세가 1505년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는 1400년대 중반에 이미 니콜로 5세 교황에 의하여 성전 재건축 계획이 세워졌다. 니콜로 5세는 건축가인 베르나르도 로셀리노에게 이 일을 일임하는데, 이때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여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이후 시스티나 예배당이 1470년대 말 식스투스 4세에 의해 1483년 8월 15일 완공, 제막식을 거행한다.

                                      

 그는 기존의 성당을 과감히 부수어 버리고 거대한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그 일을 브라만테에게 맡긴다. 그는 이 베드로 성당을 재건축하기 위해서 로마와 인근 지역에 있던 수많은 성당과 유적지에서 재료를 뽑아 쓴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의 초대 성당의 모습을 완전히 없애버려 ‘파괴의 건축가’라는 오명을 듣게 된다. 그러나 1514년 브라만테의 사망으로 일은 나중에 미켈란젤로에게 넘어간다.
1547년 바티칸 대성당 건축, 예술 주임으로 임명을 받게된 미켈란젤로는 생전에 사이가 나빴던 브라만테의 설계가 사라지리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아이러니하게도 브라만테가 만든 설계의 원형으로 돌아가 외벽의 무늬 모양, 조각 등의 벽감만을 수정했다. 또한 교황의 제단 위에 웅장한 쿠폴라(돔)를 설계한다. 하지만 그 완성은 그의 제자였던 자코모 델라 포르타에 의해 마무리된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예술가로서 최고의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오직 예술과 신의 사랑, 그리고 성 베드로의 영광을 위하여 죽을 때까지 이 작업에 매달렸다.
이후 1607년~1612년까지 카를로 마데르노가 성당의 전면을 손보고 이후 큰 변화없이 지금까지 성 베드로 성당은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이때 마데르노는 대성당의 파사드, 즉 성당의 앞면을 만들면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하는데, 차후 베르니니가 성당의 광장을 만들면서 지면을 경사지게 만듦으로써 뒤쪽의 돔이 보이게끔 수정했다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기위해 일반관람객은 긴줄을 서서 하염없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

세계 최고의 문화재를 소장한 박물관으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의 걸작이 총 망라되어 있는 서양미술의 보고이다.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자신이 수집한 고대 조각을 궁전 내부의 벨베데레 정원에 전시한 것이 시초가 되어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미술품과 도서 및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단체 예약입장권을 끊고도 20분정도 기다렸다 이곳으로 입장을한다.


가방과 소지품을 일일히 검색 검문하고 입장을한다.



피냐 정원

이 정원의 한복판에는 둥근공처럼 생긴 게 보인다. 이는 지구 모형이다. 바티칸에서 유일한 현대 조형물로,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1990년의

작품이라고 한다.







아폴론

기원전 4세기에 만든 청동상의 모작품으로 인체의 완벽함을 나타낸다. 팔이 잘린 채로 발견되었다. 추정하기로는, 왼손에는 활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등에 메고 있는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려는 모습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라오콘

트로이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이다. 1506년에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스군이 놓고 간 목마를 성안에 들이지 말라고 트로이인들에게 경고한 라오콘이 아테나 여신이 보낸 커다란 2마리의 뱀에게  2아들과 함께

물리고 있는 장면이다.






천정의 그림들.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 사진은 마음대로 찍을수 있으나 작품훼손을 염려해 쎌카봉은 절대 금지한다.


아쉽게도 미켈란제로의 천지창조등 천정에 그려진 그림은 절대로 사진촬영금지이다.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천개)가 중앙 제대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요청으로 만든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함께 르네상스, 바로크의 양대 예술작품 중 최고로 일컬어진다.
네 개의 나선형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올리브 가지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발다키노의 높이는 29m이며 중앙 제대 아래는 성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교황 요한 23세(1963년)와 바오로 6세(1978년)의 무덤도 볼 수 있다.







성당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저 빛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상징하는 곳은 높이 132.5m, 지름 42m인 돔의 중앙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마치 천국같은 분위기인데 내가 카톨릭 천주교에 세례를 받고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 돔 역시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으로, 매우 역동적이고 화려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이름은 성베드로대성전·베드로대성전·바티칸대성당·바티칸대성전 그리고 산피에트로대성당 이라고도 불린답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당의 돔은 우아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고 미켈란젤로는 156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건물에 매달렸으며,
그 뒤 1593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마침내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바실리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네이브는 그 길이가 21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노랑, 파랑, 빨간색 제복에 베레모를 쓰고 교황청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스위스 출신의 교황청 근위병이랍니다
교황청 근위병은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1506년에 창설되었고,처음에는 교황청 근위병들도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1527년 독일 용병들이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공격하자 대부분의 근위병들은 도망쳐 버렸고, 스위스 출신의 근위병들만 목숨을 바쳐

교황을 지켰다.이후 용감히 교황을 지켰던 스위스 병사들만 교황청 근위병이 될 자격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국민이 외국 군대에서 근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유일하게 교황청 근위병은 허락하고 있다고한다



산피에트로대성당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하나인 바티칸은 위대한 역사와 위대한 인간 정신의 모험을 증언하고 있다. 바티칸의 중앙에 있는 산피에

트로 대성당은 이중 콜로네이드(회랑)로 만들어졌으며 전면의 원형 광장이 있으며 궁전·정원과 인접에 있다. 성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종교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라파엘로·미켈란젤로·베르니니·마데르나·브라만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

의 천재성이 결합된 산물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총본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
가톨릭의 진원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 국가인 바티칸광장의 중심에 서있는 기둥은(오벨리스크) 기원전 1년에 이집트에서 한 덩이리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기둥으로1585년 이곳에 세워졌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어머어마한 규모, 엄숙한 구성, 그리고 강력한 권위는 세계 곳곳의

대형 교회와 정부 건물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쿠폴라

건물 비붕의 42미터에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32.5미터인 거대한 돔이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올라가면 로마 시내 전경과 바티칸 시국의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하나, 오래전 남편은 돔까지 올라갔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통제되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성 베드로 광장

1656년에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거장인 베르니니가 설계하여 12년 만인 1667년에 완공했다고 전한다.

좌우 너비는 240미터로 형태는 안정된 타원꼴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는 284개의 원기둥이 있고 중앙에는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자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높이 25.5미터에 무게 320톤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의 거장인 화가·조각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가 1656년 설계해, 12년 만인 1667년 완공하였다.
입구에서 좌우로 안정된 타원꼴이며, 가운데서 반원씩 갈라져 대칭을 이룬는데 반원형인 광장 좌우에는 4열의 그리스 건축양식인 도리스양식

원주 284개와 각주 88개가 회랑 위의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다.테라스 위에는 140명의 대리석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회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호텔이다.

유럽의 호텔은 침대도 좁고 불편하다. 그리고 목욕시설도 화장실도 좁고 난방이 안되있어 조금은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