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산행

2022. 07. 02일 양구 두타연, 화천 평화의댐

소담1 2022. 7. 6. 12:34

트레킹장소 : 양구 두타연, 화천 평화의댐

트레킹일자 : 2022년 7월 2일 토요일

트레킹인원 : 인천솔길산악회 28명과 함께

트레킹경로 : 금강산가는길안내소-(버스이동2.7km)-두타연주차장-관찰데크-두타교-지뢰체험장-두타연-전망대-두타정-

                     조각공원-양구전투위령비-주차장-(버스이동)-평화의댐

트레킹시간 : 두타연 2시간, 평화의댐 1시간

 

 

두타연(頭陀淵)

두타연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1953년 7월 27일 미국·중국·소련에 의해 155마일 휴전선이 그어지고, 1954년 2월에는 미 육군 사령관 직권으로 비무장지대 바깥에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이 정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불허된 금단의 땅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원시의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민통선 안에 둥지를 튼 두타연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더해지지 않은 태초의 자연. 그것이 두타연이 지닌 최대 매력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인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에 있는데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이기도 하다. 유수량은 많지 않으나,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높이 10m, 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하여 시계를 흐리게 한다. 이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구박이 반석 위에 찍혀 있다. 1천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데서 연유된 이름이며,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위치하여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없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지난 50년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두타연은 군사분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의 지류이자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 금강산까지 32km)이기도 한. 또 천연기념물 제74호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평화의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과 양구군 방산면 지역에 걸쳐 있는 댐. 높이 125m, 길이 601m, 총 저수용량은 26억 3,000만 t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축조하기 시작했다.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 시작되어 1988년 5월 완성되었고, 이후 댐 건설의 당위성을 입증하지 못해 중단되었다. 문민정부 때 시행된 1단계 공사에 대한 감사 결과, 댐 건설은 정권안보차원의 조급한 과잉대응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후 홍수 조절 기능의 역할로 댐 건설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어 2002년 9월 2단계 증축공사가 시작되었고, 2005년 10월 완공되었다.화천 안보 관광의 대표주자는 ‘평화의 댐’이다. 평화의 댐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스토리를 지닌 거대한 구조물 중 하나다. 댐 본연의 목적인 ‘담수’와 ‘발전’ 기능이 없는 홍수 조절 전용 댐이기 때문이다.이 댐의 목적은 오로지 ‘평화’다. 북한 금강산 댐(임남댐)의 수공을 방어하기 위한 대응 댐의 용도로 전 국민의 성금을 모아 건설됐고, 지금까지 3차례에 걸친 증축과 보수가 이뤄졌다. 과거의 태생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 강원·경기 지역의 집중호우와 북한의 예고 없는 금강산 댐 개방을 막아내며 홍수 조절 기능을 보여주기도 했다.2018년 3차 보수공사 후 댐 사면에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트릭아트’ 벽화 ‘통일로 나가는 문’이 그려져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트릭아트는 착시 효과를 이용해 가상의 공간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입체 그림이다. 화가 등 전문 인력 20명이 3개월 동안 그린 벽화는 높이 95m, 폭 60m로 댐 본체에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산악회에서는 오늘 두타연을 간다고 한다. 두타연은 민간인통제구역에 위치하고 있는곳이다. 두타연은 지난50년간 통제해 오다가 2004년에 개방된 민통선내생태계의 보고로 천혜의 비경은 분단의 비극이 보호해준 역사와 자연이 살아쉼쉬는 곳으로 최근 코로나19로 다시 통제해오다가 최근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 2022년 4월 1일부터 재 개장하였다.강원도 평화지역 국가 지질공원으로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휴전선 북쪽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통제선 북방에 위치한곳을 오늘 간다. 군사보시설보호 구역에 자리하고 있어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야하기에 산악회에서는 일괄신청을 받아 인적사항및 일반이건 경로건 단체 입장료 3000원을 입금하고 금강산 안내소에서 신분증 확인후 경로는 3000원을 다시 입금시켜주는 복잡한 절차로 진행이된다. 동막역에서 6시30분 출발하여 서울 양양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주말 행락객들로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있다. 

금강산 가는길 안내소건물.

11시 예약이라 그 시간을 넘기면 오후 1시입장을 해야하기에 애태우며 춘천휴게소를 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양구애오시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양구땅으로 들어서 다행스럽게 30분 여유를 두고 금강산 가는길(옛날 이목정안내소)안내소앞 넓은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금강산 안내소에 만들어진 철책모형.

금강산 가는길 안내소주변 조형물에서.

금강산 안내소앞에서.

민통선으로 가기위해 부대정문을 통과한다.

미리 예약을해둬  금강산가는길 안내소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신분증 대조후 위치추적기를 수령한 후 11시를 기다리며 주변 gop철책선 모형과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고 양구군에서 나온 해설사를 만난후 입장시간이 되면 군인들이 지키는 초소에서 군인이 올라와 다시한번 일일히 인원을 대조하고  비포장도로 3.7km 15분 정도 투타연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두타연 주차장에 도착하면, 해설사가 들어온 사람들을 모아 코스 소개와 함께 이 지역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배경이 된 전투가 벌어졌었고, 미국과 한반도의 많은 청년들이 처참한 전투 중 전사한 곳 이란 얘기등 주의사항 오늘의 코스를 소개해준다.

또 지정된 출입로외 출입금지 군시설등 사진촬영금지 위치추적기는 경로이탈시 군부대출동 곳곳에 지뢰가 묻혀있으니 꼭 탐방로로만 다녀야함등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두타연 트레킹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는다. 또 주차장 뒷쪽 능선을 가르키며 6.25당시 최대의 격전지 피의능선과 멸종위기종1급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과 열목어 보호지역임을 강조한다.두타연 입구에는 국내 최대 열목어 서식지라는 것을 보여주듯 열목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두타연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안쪽에 위치해 지난 50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두타연이라는 이름은 1000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됐으며 2013년부터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두타연을 알리는 열목어 조형물앞에서.

두타연 주차장 매점과 안내소 화장실이 있다.

그러면서 해설사는 오늘은 아쉽게도 지난번에 내린 비로인하여 지뢰가 유실될 위험때문에 군부대에서 두타연주변 안전한 산책로와 조각공원등 1시간30분정도만 허용이된다고 해 부득히 트레킹은 제한될수밖에 없다고 한다. 예약에 먼곳까지 어렵사리 벼르다 왔는대 군부대 방침이 그렇다는대 별수없이 그럴수 밖에 없을것 같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광안내소앞을 출발하여 산책로입구로 다가가니 열목어를 형상화한 입구 조형물이 나온다.

 

그앞을 지나 산책로로 내려서니 계곡 건너편으로 보이는 두타연의 랜드마크격인 폭포가 보인다. 산책로를 돌아보고 두타정앞 폭포 전망대로 갈예정으로 소지섭길 전망데크에 올라서 소지섭 손과 악수하며 폭포를 사진에 담는다. 폭포는 약10m의 계곡바위에서 떨어지며 그아래에는 두타소가 있다. 깊이가 최대12m로 주변으로 기암괴석과 윗쪽으로 폭포전망대가 보인다.두타연 폭포아래 오른쪽으로 깊숙한 보덕굴이라는 천연동굴이 보인다. 동굴은 폭포아래에 두타연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길에 의해 형성된 하식동굴로 물의힘에 의해 모래와 자갈이 소용돌이 치며 만들어진 포토홀이라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는다.

 

전망대에는 세로로 세워진 철판에 소지섭길 설명과 소지섭의 손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악수하고 양구에서 소지섭주연으로 카인과 아벨이라는 영화를 촬영하러 양구군 민통선 두타연에 둘렀다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양구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 아름다움을 펜들에게 알려줄 목적으로 배경으로 찍은 포토에세이집 소지섭길(2010년)을 출간 하여 자연히 알려지기 시작을 했다.

 

양구군 방산면에 소재한 두타연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휴전 후 50여 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숲과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천 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두타연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로도 알려져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타연.

위쪽으로는 민가가 없기 때문에 오염원이 없어 물 자체가 굉장히 맑고 또 금강산에서 내려온 물이니까 아무래도 우리 내륙에 있는 물보다는 더 깨끗한 물이고 오염이  되지 않은 곳이다. 두타연에 모인 금강산 물은 다시 흘러 시민들 쉼터가 된 파로호에 모이고, 이후 북한강을 따라 내려가 한강, 그리고 서해로 나아가게 된다.

 

두타연 폭포를 바라볼수있는 전망데크.

산책로.

지뢰탐험장에서.

소지섭길은 아름다운곳 총51km 6개코스로 만들어뎠다고 한다. 데크 전망대를 지나면 맑은 계곡을 내려다 볼수있는 두타교에 도착을 한다, 출렁다리 위에서 계곡물을 바라보고 나와 DMZ지뢰 체험장에 선다. 지뢰 체험장에는 여러가지 지뢰모형과 설명판이 있다. 로프가 쳐진 안쪽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를 해설사가 한다. 녹슨 철모와 수통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들어왔던 길을 뒤돌아나와 두타정쪽으로 가기위해 나무계단을 올라서 두타연 전망데크위에 올라선다.

 

두타연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금강산 가는 길목(금강산까지 32km)이기도 하다.천혜의 비경을 가진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이고,1천년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며 휴전이후 50년간 민간인출입통제선 오다가 개방되어  민통선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두타정으로 올라가는 계단딜.

두타연 전망대에서.

 

소용돌이 치며 흘러 떨어지는 두타연 폭포 물소리를 들으며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까지 덤으로 바라보고 두타정앞을 지난다. 시원한곳에 자리한 두타정은 그렇게 운치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두타정을 지나 조금 올라오면 두타사 옛터라는 문이있다.두타연의 지명이 1천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됐다는 점과 축대와 와편, 도자기편이 산재하고, '頭'자가 시문된 '銘文瓦片'이 이곳 지표에서 수습된 점 등으로 보아 그간 학계에서 위치 문제에서 혼선을 빚었던 몇가지의 설에 대하여 이곳이 두타사터임을 증명하고 있다.두타란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한 마음으로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타연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숨은 명소로 폐사지로서의 사료를 간직하고 있는 보물같은 곳이다.

 

조각공원과 두타정 사잇길에는 두타사 터 팻말이 서 있다. 고요한 심산유곡인 이곳에 터를 잡았던 ‘두타사’는 심신을 청신하게 닦는 山寺의 이름으로 더없이 좋았으리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돼 있는 두타사는 고려 시대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며, 적어도 17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타사터를 지나 조금더 올라오면 널지막한 조각공원을 만난다.조각공원에는 6.25전쟁때부터 사용하였던 자주포 전차 미사일등이 전시되있고 잔디밭광장에는 조각회거푸집 소속 31명의 회원들이 각각 1점씩 31점이 전시되있다. DMZ의 과거와현재를 주제를 표현한 작품들이다. 대표적으로 소원이이루어진다는 소원항아리를 비롯해 잃어버린신발(한짝은 북한에 있어 통일후에나 찾아 만나게된다는 작품)  여인의 그리움(눈물짓는 여인) 대상을 받았다는 눈(目) 새로돋는 싹 중첩 헌화(국화한송이) 슬픈 기다림등을 차례로 돌아보고  포토존과 양성우 시인의 '두타연 숲길에서'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옆으로 사각 액자모양의 포토죤에서 사진을 남겨본다.

 

전쟁터에서 쓰였던 탱크(?) 라던가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앞 넓은 잔디밭에 앞의 망가진 드럼모양을 가져다 놓았는데 나름의 의미가 크다. 다 망가진 드럼에서도 새 생명은 자란다고. 드럼통안에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이것말고도 DMZ 주제로 30정의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조형물들이 더 전시되어 있다

 

조각공원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양구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 같은 전차와 탱크 등도 전시되어 있다.또 양구 지역 9개의 전투 소개판이 있다.

 

잃어버린 신발앞에서.

포토죤에서.

 

포토죤을 둘러보고 양구전투 위령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비득안내소 평화누리길 방향표지가 있다. 이곳에서 하야교와 비득안내소 까지 다녀올수있는 입구인데 군인차 한대가 서서 통제를 하고있다. 바로 위에있는 위령비앞으로 걸어간다.

 

이 곳에서 누구나 알만한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6개월동안 총 9번의 전투가 있었고 실제로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 나온 전투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다 위령비가 세웠다.이 곳에서부터 직선으로 2km 가면 바로 북한이다.

 

이곳에서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의 전투가 있었다. 6개월동안 총 9번의 전투가 있었고 실제로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 나온 전투의 배경이기도 하고 이곳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양구 전투 위령비 옆에는 길 가소서 라는 위령문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격전지를 돌며 그때 그때 떠오는 글을 적었던걸 다 합쳐서 수정한 글이라고 한다. 

 

양구전투 위령비는 한국전쟁중에 치열했던 양구지역 격전지 전투(도솔산지역전투,펀치볼지역전투,가칠봉전투,피의능선전투,백석산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호국영령들의 넔을 기리고자 1994년에 걸립했다. 위령비 앞에는 건립취지문과 주요전투지역 전투개황등 설명판이 서있고 그옆으로 길가소서 시비도 있다. 영령들께 묵념을 하고 임도길을 따라 두타연 주차장으로 나오며 길가에 지뢰 표지와 철조망을 바라보며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길 곳곳엔 아직 철조망과 지뢰 경고표시가 곳곳에 설치돼있다.

주자장에 도착을하여 2시간여 신비에 쌓였던 깨끗한 생태계의 보고인두타연을 일부구간만 아쉽게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금강산 가는길 안내소에 나와 위치추적용 목걸이를 반납하고 예정보다 일찍 트레킹이 끝나 두타연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평화의 댐을 돌아보고 간다고 출발을 한다.

 

위치추적 목걸이

두타연 트레킹을 아쉽게 끝내고 지척거리에 있는 화천 평화의 댐을 돌아보고 가려고 츨발하여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올라 평화의댐 표지석앞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편화의댐은 총 공사비는 1,700억 원이었으며 이 중 639억여 원은 반년 동안 모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되었다. 1987년 2월 28일 착공하여 1989년에 1단계가 완공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에 들어서야 국정감사를 받으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14] 북한의 금강산 댐의 저수량은 최대 59.4억 톤에 불과하므로 그 위협은 의도적으로 과장된 것이며, 이를 대비하기 위한 평화의 댐의 필요성도 엄청나게 부풀려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3년 댐 완공 뒤에 정보당국이 항공사진으로 판독한 결과 그 절반 수준인 26억 2,000만 톤으로 판명났다. 

 

안내도.

평화의 댐은 이름은 댐이지만 '발전 기능과 용수 공급 기능이 없는 댐'이라서 비용에 비해 정말 하는 것이 없는 댐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도 떠안게 되었다. 아예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건류댐이니 뭐(물론 후술할 내용처럼 '만일을 대비해' 지어진 댐이니 만큼 건류댐인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보통 댐이라면 배수량을 인위적으로 조절, 홍수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댐은 비상시 대량방류를 할 수 있는 수문이 따로 없으며 대신 댐 옆에 설치된 여수로 몇 개가 작은 수문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바보댐이란 별명도 붙었다.그래도 댐은 댐이니 완전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02년, 2005년 북한 측에서 예고없이 금강산댐을 수억 톤 방류했을 때는 물론, 1995년, 1996년, 2010년에 일어난 강원 북부 지역의 집중호우에 대처 및 방어하는 효과를 보았다.

 

댐 위로난 도로길.

화천 안보 관광의 대표주자는 ‘평화의 댐’이다. 평화의 댐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스토리를 지닌 거대한 구조물 중 하나다. 댐 본연의 목적인 ‘담수’와 ‘발전’ 기능이 없는 홍수 조절 전용 댐이기 때문이다.이 댐의 목적은 오로지 ‘평화’다. 북한 금강산 댐(임남댐)의 수공을 방어하기 위한 대응 댐의 용도로 전 국민의 성금을 모아 건설됐고, 지금까지 3차례에 걸친 증축과 보수가 이뤄졌다. 과거의 태생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 강원·경기 지역의 집중호우와 북한의 예고 없는 금강산 댐 개방을 막아내며 홍수 조절 기능을 보여주기도 했다.건설 과정에서 제5공화국 정권이 북한의 수공 위협을 과장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정황이 이후 제13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의 증언과 감사원 조사 등을 통해 밝혀졌다. 이 때문에 제6공화국 이후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래전에 북한의 수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워진 댐, 화천 평화의 댐이다.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을 건설, 무려 200억 톤의 수공을 펼쳐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는 과장된 발표로 국민 성금을 모금했었다.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온종일 63빌딩이 절반이나 물에 잠기는 것을 비롯해서 서울특별시의 주요 건축물이 물에 잠기는 모형을 보여주었고, 대학 교수들이 출연하여 그럴싸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허구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평화의 댐을 건설할 때와는 다른 용도로 평화의 댐이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홍수 조절기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서 증축되기도 했고, 지금은 화천 관광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평화의댐 표지석앞.

평화의댐 하부쪽.

평화의 댐 하류 콘크리트 경사면 벽에 그려진 세계 최대 규모의 ‘트릭아트’ 댐 벽화가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한국수자원공사가 2018년 11월 12일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에 조성한 높이 95m 폭 60m 크기의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초대형 벽화 작품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밝혔다.이 벽화는 높이 95m 폭 60m 규모로 기네스 세계기록(4775.7㎡)에 등재됐을 정도다. 기존에 세계 최대였던 중국 난징의 ‘트릭 아트’ 작품보다 2배 가까이 크다. 트릭 아트’ 벽화는 댐 중앙이 뚫려 있어 하천의 물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댐 자체는 별로 볼 것 없지만 가는 길에 두타연, 비수구미마을 등 명소가 많으며, 자연 경관이 정말 멋지고 깨끗하다. 한 번 쯤 여행해볼 만한 곳이다. 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전시관, 평화의 종, 비목공원, 캠핑장, 깨끗한 화장실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한 번쯤 둘러볼만하다.. 식당과 매점 카페도 있고 평화의 댐 자체의 전경은 꽤 아름다운 편이다.

 

평화의댐 상부쪽.

종 옆으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아웅산 수지 여사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핸드 프린팅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또 평화의 종 공원에는 29개국에서 보내 온 종들이 전시돼 있고 울림·평화의 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29개국의 분쟁 현장과 6·25전쟁 당시 사용된 탄피 1만관(37.5톤)으로 평화, 생명, 기원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초대형 범종인 평화 종은 심오한 의미가 있다.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관 중에서 1관은 따로 분리하여 9,999관으로 주조되었는데, 나머지 1관은 통일이 되면 평화의 종에 추가하여 완성한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는 미완성의 종이다. 범종의 상단부에는 비둘기 네 마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중 한 마리의 날개를 따로 떼어내 공원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이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 날, 이 날개를 붙여 온전하게 타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평화의 댐 한쪽에 위치한 비목(碑木)공원에는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가 나무로 엮어 만들어진 십자가에 걸려 있다.

 

碑木(비목)은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던 전쟁터에서 죽어간 병사들의 무덤을 알리는 나무 십자가와 철모를 뜻하는 것인데, 그 노래에 나오는 그 깊은 계곡이 바로 이곳입니다. 사실 정확히 이곳은 아니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곳에서 국민가곡 ‘비목’이 태어난 사연은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 청년 장교는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이끼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만난다. 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 애상에 잠기고,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노랫말을 만들어냈다. ‘비목’은 1970년대 중반부터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는데, 가사를 쓴 초급 장교는 바로 한명희 씨이다.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과는 별개로, 건설된 평화의 댐은 홍수조절전용댐으로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96년 홍수 때와, 1999년 여름에 700~800mm가 내린 대폭우에는 이 댐이 일부 물을 가두어 당시 화천댐이 범람 위기에서 모면할 수 있게 하여 북한강 수계의 홍수를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2002년 1월 공사를 재개한 금강산댐에서 초당 206t씩 흙탕물이 쏟아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약 19일에 걸쳐 3억 5000만t의 물폭탄이 쏟아져 북한강 수계 가장 선두에 있던 평화의 댐이 붕괴 위기까지 갈 뻔했다. 이 일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방류 중단과 공동조사를 요구했으나 북한에서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평화의 댐을 125m로 높이는 보강 및 증축공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평화의댐 물문화관.

평화의 댐 상층부에는 2009년 조성된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이 있다. 이곳에 설치된 평화의 종은 높이 5m, 폭 3m, 무게 37.5t에 이른다.이 종은 화천군이 6·25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화천을 평화의 땅으로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종을 세계 분쟁지역 30개국에서 수집한 탄피와 6·25전쟁 때 사용된 탄피를 녹여 만든 것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관광객들은 타종료를 내고 종을 칠 수 있는데, 모아진 타종료는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들의 장학 사업에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