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장소 : 옹진군 연평도
여행일자 :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여행인원 : 인천솔길산악회 23명과 함께
여행경로 : 당섬선착장(연평바다역)-연육교-평화공원-조기역사관-등대공원-안보교육장-망향전망대-평화전망대-
함상공원-선착장
머문시간 : 10 : 00 ~ 15 : 30 (5시간30분)
연평도(延坪島)
대한민국의 섬. 서해 5도 중 하나로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소속되어 있으며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은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황해도 해주군[3] 송림면 관할의 도서 지역이었으며,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 송림면은 7개 리로 이루어져서, 면사무소는 본래 옹진반도 본토의 송현리에 있었고 연평도는 그에 속한 하나의 리였으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로 본토[4] 및 소수압도, 대수압도, 육도(六島)가 북한 치하에 들게 되자, 면사무소를 연평도로 옮겨온 것이다. 이후 광역시 체제가 들어서면서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99년 면 이름이 송림면에서 연평면으로 변경되었다. 어차피 송림면 본토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연평도라는 지명이 자칫 묻힐 수 있어서이다.현재 연평도 주민의 70% 가량은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후손들이다.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5] 현재 북방한계선과 인접하므로 북한과 매우 가깝다. 실제로 연평도와 인천항 간의 뱃길은 122km나 되지만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의 거리는 12.7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육세미뿐만 아니라 38km 거리의 황해도 해주 땅까지도 육안으로 또렷이 보일 정도다. 따라서 북한이 옹진반도와 주변 섬에 설치한 해안포 사정거리에 들어가므로 유사 시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이것 때문에 서해 5도의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해병대 연평부대가 섬 안에 주둔하여 섬을 방어한다. 한편, 바다는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소속 경비함정들이 항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해병대도 대한민국 해군본부 예하인 만큼 섬의 방어는 해군이 전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어선 조업 단속 등을 위해 해양경찰청도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둔다.다른 최전방 지역에 비해 꽤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대연평도는 일산신도시, 북한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고, 소연평도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은평구,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와 동위도이다.
산악회에서는 이번주 정기산행은 없고 번개산행으로 연평도를 20명에 한하여 다녀온다고 한다. 인천에 있는 섬투어와 죠인이 되여 인천시민에 한하여 33,000원에 선표와 점심 그리고 연평도에서 이동할 버스비까지 라고 한다. 참 좋은 조건이지만 식당규모와 소형 이동버스로 인하여 20명만 된다고한다. 하지만 3명이 더 신청되 투어에 부탁하여 23명이 출발을 하는 날이다. 아침 8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에서 출발하는 배이기 때문에 7시20분까지 모이라고해 정확히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을하여 수속하고 8시 정각에 연평도행 플라잉 카페리호는 출발을 한다.
날씨가 참좋다 오래전에 연평도를 다녀올때는 거친파도에 배멀미를 하여 고생했는대 파도도 없고 바다는 조용하다.토요일인데도 좌석이 많이 비여 편안한 자리로 옮겨 2시간 뱃길을 달려 소연평도에 잠시둘러 승객 몇명을 하선시키고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 도착을 한다.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하며.
연평 바다역.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는 그전에 바다역 출입문앞에 있었는데 방파재입구로 옮겨져 있다.
배에서 하선하여 방파제 옆으로 옮겨 서있는 최숙자님의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같이온 승객들은 각자 마중나온 팬션차와 지인들의 승용차 마을버스에 올라 출발을 하고 우리는 오전 여행은 걸어서 하는것으로 되있어 연육교쪽으로 걸어간다. 연평도는 인천에서 145km떨어져있고 북한의 부포리까지의 거리는 불과 10km거리에 있다.
연평 바다역전경.
썰물때라 물이 뻐져나가 연육교 하부길로 들어선다.
연평도는 특별한 명승지나 관광지등은 많이 있지 않지만 섬 전체가 안보체험장으로 보면 될것 같다. 그중 연평도 포격현장이 보존된 안보교육관과 연평해전 전사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대표적이다. 연평도는 유인도2개(소연평,대연평도) 무인도4개(당도,책도,구지도,모이도)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의 석도까지는 불과 3km,개머리해안 까지는 12km로 우리나라 국방의 중요한 전초기지 이기도 한다.
연육교 하부 교대의 모습.
바다역앞 노래비 가사에서 보듯 예전에는 연평도 하면 조기어장이 떠올랐는대 지금은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연평도 남부리 연육교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연평마을까지는 1.5km정도라고 한다. 상부교량입구에는 연평해병전승비가 있지만 오늘은 두르지 못할것 같다. 여행끝내고 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연육교 하부길을 걷는다 썰물때라 물이빠져 나가 하부길을 걸으며 교각이 줄지어 서있는 다리 아래를 걸어가며 연평면사무소가 있는 연평마을 입구에 도착을 한다.
연육교 하부길을 걸으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연육교 하부길과 상부길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연평마을이고 우리는 좌측길로 들어선다. 삼거리 방파재 앞에는 연평바다역1.1km,평화공원1.9km,아리까리마을 연평면사무소0.9km,안보교육장0.94km이정표앞을 지나며 방파재 옹벽에 조기파시때의 모습을 찍은 사진벽화를 여러장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평화공원으로 향한다.
마을입구와 선착장입구 삼거리 이정표에서.
사거리 이정표에서 좌측 평화공원쪽으로.
해안도로로 들어서 피난대피소 앞을 지나며 지나온 연육교와 당섬 모이도를 바다위에 떠있는듯한 아름다운 모습과 안테나 철탑이 우뚝솟아있는 소연평도를 바라보며 폐 어구 그물들이 쌓여있는 길을 따라 아리까리 마을앞 이정표에 도착을 한다.
그리고 조금더 걸어가 소각장 갈림길앞에 선다. 오래전에 왔을때는 좌측길 가파른 언덕길로 등대공원으로 먼저 올라갔었는대 오늘은 우측길을 따라 레미콘공장과 주유소앞을 지나 사거리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평화공원0.3km,가래칠기해변0.28km,연평면사무소2.25km,구라동해변1.2km에서 300m남은 평화공원쪽으로 올라가다 주차장을 지나면 평화공원 입구가 나온다.
용치를 형상화한 추모비.
입구에는 평화공원 안내도가 서있고 넓은 광장으로 올라서면 우측으로 군수장비(대잠헬기,전차,상륙장갑차)가 전시되있다. 우측으로는 쉼터 작은 정자 그리고 정면에는삐죽삐죽 뽀족한 조형물 여러개가 하늘을 향해 서있는 추모비가 있다. 설명판에는 용치(龍齒 용의 이빨)를 형상화 하여 적의 기계화 군대나 적의 상륙정이 상륙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닷가에 설치한 방어물 형태를 형상화하여 만든 위령탑이라고 한다.
그옆으로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전개도가 시간대별로 설명되여있는 설명판과 사진앞으로 다가간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6월15일 연평도 서방 10km해상에서 북한경비정 7척이 북방한계선(NLL)를 침범하여 우리고속정 4개편대(8척)과 대응중 북한경비정 6척이 충돌 공격을 감행하자 14분동안 교전하여 적의 경비정1척 격침 5척 대파 4척 중파시킨 전과를 올렸고 제2연평해전은 서울 월드컵이 한창 진행된 2002년6월29일 연평도 서방 22km해상에서 2척의 경비정이 NLL를 3마일 침범 우리군은 교전규칙에 의해 북한경비정 1척을 대파시키고 북한군 약 30명 사상이 추정되는 전과를 올렸다.
연평해전 교전상황 전개도
공원을 한바퀴돌며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연평도 포격 전사자 하사 서정우,일병 문광욱 앞과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영하 소령외 6명의 동판얼굴앞에 가서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고 조금아레있는 위령탑까지 둘러보고 조기역사관으로 가기위해 오솔길을 따라 가래칠기 해변을 내려다 볼수있는 전망데크에 도착을 한다.
연평도 포격 전사자 위령비.
공원을 돌아보고 출발하며 바라본 모습.
평화전망대에서 조기역사관으로 가는 길.
돚단배 조형물.
전망대에서는 가래칠기 해변을 내려다 볼수있고 북한땅 개머리해안이 건너다 보인다. 가래칠기해변은 연평도에서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곳이다.남북방향으로 약 1km뻗어있는 해안침식 지형으로 바닷물이 들어올때와 나갈때의 느낌이 다르고 일몰때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 명소이다. 작기는 하지만 해변에는 자갈과 굵은 모래알들로 형성된 천영해변으로 암석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아름답다.
가래칠기 전망대에서.
전망대를 돌아보고 나오면 조기역사관으로 가기전 조기섬 표지석과 돚단배 조형물이 서있다. 지금은 조기가 나오지 않지만 한때는 조기시장으로 유명한 파시가 열렸고 조기잡이 철이면 어선이 전국에서 3천여척이 몰려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형물 앞을 지나 조기역사관 앞으로 간다.그전에 왔을때는 역사관앞에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치는 조형물이 있었는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등대공원 바로 밑에는 팔작지붕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조기역사관이 있다. 건물의 1층에는 연평도 조기잡이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된 조기역사관이 있고, 2층에는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누마루 형태의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조기역사관 옆에는 연평도 조기 떼와 조기잡이배를 묘사한 조각상도 세워져 있다. 조기역사관에서는 연평도의 북쪽 해안으로 곧장 이어지는 군용터널도 있다. 최근에야 처음으로 관광용으로 개방된 이 터널 계단의 양쪽 벽에는 연평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조기역사관 내부의 모습.
북쪽의 큰 섬이 대연평도, 아래쪽의 작은 섬이 소연평도, 대연평도 아래쪽에 있는 연륙교로 연결된 섬이 선착장으로 사용되는 당섬 그리고 외딴 섬이 구지도.
조기역사관과 2층 전망대건물.
1층 조기역사관을 돌아보고 2층 전망대로 올라간다. 전망대는 연평도의 역사와 조기잡이등을 교육하고자 2001년에 설립한곳으로 이곳 전망대에서는 1999녕6월15일에 일어난 서해교전지 쪽을 바라볼수있고 멀리 북한의 개머리해안이 보인다. 이곳에서 북한 해주까지는 12km,NLL까지의 거리는 1.6km밖에 안되는 지척거리에 있다.
2층전망대에서 소연평도와 바로앞 구지섬이 바로앞에 건너다보인다. 구지섬은 나무한그루 없이 황폐하다. 갈매기 서식지로 산란기에는 대단한 장관을 보이고 갈매기 분비물로 풀이 자랄수 없어 지금처럼 황폐화 됬다고 한다. 전망대를 내려와 군터널관광시설 가는길이라는 팻말쪽으로 데크길을 가니 방커가 나오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이어진다. 군터널과 빠삐용 절벽까지는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겠기에 포기하고 등대공원쪽으로 이동을 한다.
등대공원과 조기역사관 부근은 연평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므로 가래칠기 해변, 빠삐용 바위, 구리동해수욕장 등으로 이어지는 연평도의 서쪽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빠삐용 바위는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 절벽과 비슷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연평도 북쪽 해안에 위치한 구리동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이 깨끗해서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있다.
가래칠기 해변을 볼수있는 전망데크.
등대공원으로 가다보면 넓은공터에 조난어업자위령비가 설명판과 함께 서있다. 이 비는 1934년6월에 발생한 조난사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것이다. 1934년6월1일 폭풍우를 피해 연평항에 모여있던 어선 600척이 그 다음날인 2일 오후2시부터 밀물때 폭풍우가 치며 높은 파도가 밀려와 어선끼리 충돌하여 323척이 피해를 입었고 20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황해도 수산회에서 1934년 9월 연평어업조합 서쪽에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앞을 지나 등대공원 하얀등대앞에 도착을 한다. 등대는 1960년3월에 처음 불을 밝힌 뒤로 한동안 연평도 어선들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노릇을 했던 등대로 1974년 7월 국가안보 상의 이유로 소등했다가 1987년에는 완전히 등대 기능을 상실했다. 빛도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그곳을 지키는 등대는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노릇만 하고있다.
건너다본 소연평도.
등대공원에서 바라본 구지섬.
등대를 돌아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서면 작은 쉼터 정자가 있다 간단한 요기와 물을 마시고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는 뷰가 참좋다. 연육교건너 당섬과 소연평도 구지섬을 바라보며 S자로 생긴 도로를 따라 연평도의 중심가 지구대 해양경찰파견대 학교 농협등이 있는 큰 마을로 내려와 골목길을 따라 맛집으로 소문난 단촐하고 깨끗한 밀물식당으로 들어간다.
소연평도와 구지섬을 배경으로.
가파르고 긴 언덕길을 따라 내려온다.
뱃터인 당섬과 이어진 연육교.
연평도 포격사건휴 여러개의 대피소가 만들어져 있다. 그중하나 대피소 2호.
방파재 옹벽에 븥어있는 파시의 모습.
경찰 연평지구대.
행정시설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면사무소가 있으며 인천경찰청 인천중부경찰서 연평파출소, 해양경찰청 인천해경 연평파출소, 인천소방본부 인천중부소방서 연평 119 안전센터[8] 등이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 119 안전센터에서 소방차, 구급차를 출동시켜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등을 벌였고 연평파출소 근무 경찰공무원들도 주민 대피를 돕는 등 군과 함께 섬 주민 보호에 나섰다.
운동장 옹벽에는 포격당시 포탄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다.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연평도 포격당시 옹벽에 맞은 포격자욱.
이미 예약을 해놨고 등대공원을 출발할때 전화를 해놔서 식당에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잡은 꽃게로 맛있게 탕을 끓여 놓았다.냄비 전체에 꽉 찰 정도로 꽃게를 많이 넣고 또 서글서글한 주인아주머니의 손맛과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다. 반찬도 정갈하고 리필도 친절하게 해준다. 배불리 먹고나와 지척 거리인 안보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안보전시관에 도착을 하니 문앞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저있고 오래전부터 문을 닫은듯 조용하다. 안보교육관은 2010년11월23일 뷱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의 현장으로 그때 군부대와 민가에 150여발의 포탄이 떨어져 가장 피해를 봐 완파된 가옥안에 교육장을 만들고 그때의 포격상황과 피해잔해들을 보존하고 포격 현장이 보존 전시한 곳으로 오래전에 왔을때 1층과 2층전시실까지 다돌아보고 갔는대 오늘은 참 아쉽다.
시간맞춰 24인승 미니버스가 안보교육관앞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망향전망대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담한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끄트머리에 화장실이 있고 그 앞으로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곧고 길게 만들어져 있다. 점심을 바로 먹고와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숨소리가 크게들린다 그러는 사이 망향전망대 넓은 광장에 도착을 한다. 연평도 동북,서북쪽에 자리한 망향전망대에는 북을 바라볼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있다. 바다건너 북녁땅 옹진반도를 가깝게 볼수있다. 사진설명판에는 개머리해안도 표시되있다. 재래식 대포 들을 동굴속에 숨겨논 그 해안이다. 한참을 돌아보고
망향가가 붙어있는 망향탑으로 다가간다.
망향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앞 바다를 내려다 보니 NLL구역에서 우리나라 어선도 북한 선박도 아닌 중국어선들이 자유롭게 우리해역에서 물고기를 잡고있다. 분단의 현실이 느껴지는 슬픈모습이다. NLL와 붙어있는 북한의 석도,무도,갑도는 물론 개머리해안을 바라보며 잠시 아픈 한반도를 돌이켜 본다.
2014년 4월부터 중국 국적 어선들이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 오래전 관련 기사에는 해경특공대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진도군 해역으로 떠난 이후 더 기승을 부렸단다. 이 어선들은 대한민국 해군과 해양경찰청이 단속을 시작하면 북한 지역으로 달아났다가 단속을 멈추면 바로 다시 대한민국 영해로 들어와 불법 조업을 재개한다. 5월 1일에는 150여척이나 몰려왔다고 하니 이쯤되면 해적이 따로 없다.
서해 5도의 특성상 북방한계선과 인접한 관계로 1970년대부터 북한의 도발에 갖은 피해를 받는다. 섬 주변 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을 겪었고 그 때마다 연평도 어민들은 어업활동이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았다. 다들 알다시피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포병 사격이 섬에 80발 정도 명중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북한이 도발을 한 것으로 앞서 벌어진 해상도발들의 수위를 뛰어넘는 정전협정 위반을 저지른 국지도발이었다. 피해 상황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연평도 포격전을 참고하길 바란다.연평도 포격전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사건 당시에는 대부분 대피호에 숨었다가 연락선, 어선 등을 타고 인천으로 속속 대피하여 평소 14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한때 100여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포격 5개월 후인 2011년 3월 기준으로 섬 주민의 80% 이상이 섬으로 돌아왔다
망향전망대에서 북한쪽으로 서서.
망향전망대 입구.
망향전망대 올라가는 긴계단길.
망향전망대 주차장에서 미니버스에 올라 개관한지 오래되지 않은 평화전망대로 가는길 도로옆을 지나며 운전해 주시는 팬션 사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길가옆 작은 추모비를 가르키며 이곳이 연평도 포격때 민간인 2명이 희생된곳이라고 한다.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산길에서 유명을 달리한 배씨와 김씨의 추모비앞을 지나자 차광막이 쳐진 큰 벙커앞 또하나의 추모비를 가르킨다. 사정후 하사가 피폭된 방커앞 소나무 아래 세워진 설명판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그대 라고 써진 작은 설명판이 서있다. 서정후 하사는 1910년11월23일 연평도 전역에 빗발치듯 포탄과 화염속에서 해병 연펑부대 서정후하사는 전투임무 수행을 위해 휴가를 포기하고 중대로 복귀중 2차 포격시 이곳에서 장렬히 산화한 곳으로 서정후 하사의 해병대 모표가 이 소나무에 박혀 그날의 아픔과 함께 해병 서하사의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설명판 앞을 지나 평화전망대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평마을과 연육교 그리고 당섬쪽 선착장.
연평마을과 연평항 그리고 소연평도가 보인다.
평화전망대 내부.
평화전망대는 지은지 얼마 안되보이고 지하1층 지상3층의 건물로 3층은 군시설로 출입이 통제되고 2층에는 NLL연평도와 북한의 경계선모형도와 개머리해안이 창문넘어로 보인다. 반공과 분계선을 설명하기 위한 의자들이 설치되있다. 둘러보고 지하층으로 내려오면 카페가 운영중에 있다. 오늘은 일정은 여기서 끝이났는대 배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운전해 주는 팬션사장에게 부탁하여 함상공원 한군데 더 다녀가자고 부탁하여 함상공원으로 출발을 한다.
함상공원에는 연평도 해전당시 참전했던 모델과 같은 참수리급 폐기된 고속정이 전시되있다. 잠시 함상위로 올라가 기관총앞에서 사진을 찍고 당섬과 본섬을 잇고있는 연육교를 바라보니 때마침 밀물이 들어와 물에 떠있는듯한 멋진 풍경을 버고 함상공원을 출발하여 선착장으로 출발을 한다.
연육교와 소연평도.
아침에 올때는 물이 나가 다리밑으로 갈어서 나왔는대 물이 들어와 하부는 물에 잠겨 다리 상단길을 따라 버스에서 연평해병 전승비는 차안에서 바라만보고 당섬 바다역에 도착하여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배를 기다리다 시간맞춰 도착한 인천행 쾌속정에 올라 3시30분 정시에 출발을 하여 2시간만에 인천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바뿌게 돌아온 연평도 이지만 아픔을 간직한 북단의 연평도 여행을 마무리한다.
선실내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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