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침식사를 느즈막히 먹고나서 남편은 심심한지 TV채널도 돌리고 컴퓨터 게임도하고 하던이 어딜 가잔다.
어제 가평 운두산을 6시간이나 걷고왔는대 이더위에 어딜가냐 하니 월미공원 가본지가 오래됬다고 다녀오자고 조른다.
준비하고 월미공원 주차장에 도착을하니 벌써 만원이다. 공휴일에는 도로 한차선 주차가 허용된다는 안내판이 있어
다행히 한곳이 비여있어 주차하고 해군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탑이 없었는대 새로 세워져 그곳으로 한국전통공원으로
월미산전망대,정상을 다녀내려와 이민사박물관 그리고 문화의거리까지 천천히 3시간30분동안 더위에 돌아보고
집에돌아와 더웠지만 오랜만에 월미공원을 다녀와 사진을 정리해놓는다.
월미산(月尾山)
월미산은 해발 108 m로 등산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할정도의 산이다.산책길이 잘닦여있어 산책삼아 올라가면 그리 힘들것도없다.
월미도는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는 군사기지였고,개항후에는 조선에 들어오기위해 머무는 첫기착지였다.
6.25동난때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 이였으며 전쟁후에도 군부대가 주둔해 출입이 통제되다가 2001년 9월10일 인천시민에게
되돌려주었다.최근 문화유적 조사결과 임금이 국난등 유사시에 사용했던 비밀행궁과 돈대,월미진사(관사) 예포등이 있던것이
확인됬으며 인제 감점기에는 신사,공원,유원지등으로 개발되 행락지로도 각광을 받기도했다.
월미산 정상에서면 인천대교 영종대교를 비롯해 작약도,팔미도 무의도등 서해안의 크고,작은섬들이 조망되고 인천공항과 강화도
마니산까지 바라다 볼수있고 해질때의 낙조또한 멋진곳이기도하다. 월미산 아래 문화의거리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예술가들이 모여
각자의 특기를 뽑내고 각종놀이기구와 횟집이 자리하고 인천앞바다를 돌며 유람할수있는 유람선선착장과, 지금은 두개의 긴다리가
있어 옛날의 호황기는 지났지만 영종도 구읍뱃터까지 왕복하는 배의 선착장이기도하다.
월미공원 입구에서.
공원관리소의 건물.
해군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탑.
지금은 평택항으로 옮겨갔지만 인천에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있었다. 그 사령부가 주둔했던것을 기념하기위하여 만들어진 탑이다.
해군병사와 악수도해보고.....
월미공원에는 한국전통정원지구가 만들어져있다. 전통적인 양식을 궁권의정원과 민가형태로 재연하고
입구로 들어서면 아미산굴뚝,벽돌담,돌담등이 만들어져있다.
월미도의 연혁이 써져있다.
부용지: 창덕궁안에있는 부용지와 부용정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부용정앞에서.
애련지의 불로문앞에서.
애련지와 애련정: 조선 숙종18년(1692년) 창덕궁 후원 연못으로 송나라 주렴계가 연꽃을 사랑하여쓴 애련설에서 따온말이다.
원 건축물은 창덕궁내에 있다. 모조해 만든 정자이며,애련지입구에는 불로문이 만들어져있다.
초가: 옛날 시골의 모습으로 논과 밭에는 곡식이 심어져 익어가고 초가집앞마당에는 윷놀이,지개 절구,다듬이돌,맷돌등이 놓여있어
찾는이들이 한번씩 놀이를 해보며 옛추억을 더듬을수있는곳으로 한편에는 우물도 있다.
한적한 농촌의 초가를 연상케한다. 주변 논밭에는 여러가지 채소와 곡식들이 심어져있다.
옛날 양수기가 없을때 두레질을 했다. 물을 퍼 논에 물을 푸는 두레를 한번 해보았다.
월미폭포.
양진당: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이다.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견암 류운룡이 안동 하회리에 조성한 17세기초의 건물을 그대로 재현해 지어놓았다.
월미공원을 둘러보고,월미산을 오르는 계단옆에있는 월미정에서.
숲이 울창하고 때가 묻지않아 여러가지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고 인위적인 분위기가 덜풍겨 걷기가 좋다.
월미공원에서 계단을따라 지름길로 올라서면 바로 월미공원 귀환광장에 오를수있다.
월미공원 귀환광장과 뒤로보이는 귀환기념비앞에서.
귀환광장에서 좌측길로 올라가면 월미돈대로가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월미전망대로 가는길이다.
월미돈대와 홍이포앞에서.
돈대에있는 홍이포앞에서.
월미돈대뒤로 인천항과 인천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월미전망대를 배경으로.
전망대에서 인천내항쪽을 배경으로.
전망대에서 월미산정상과 돈대쪽으로.
인천항갑문:인천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수문식 도크를 만들어 배를 통행시킨다.
인천내항(옛 인천제2도크의 모습.)
월미전망대: 월미산전망대를 처음볼때는 조금은 낮설고 이상한모습이다. 계단을 돌아 올라가는 방법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의외로
높은곳에서 인천항과 인천시내 서해바다의 섬들 월미산,인천대교를 바라볼수있게 만들어져있다.
2005년2월에 공사를 시작해 2005년10월 완공한 월미전망대는 높이23m 총3층의 높이이다.아랫부분이 좁아지는 모양으로 조명이 밤에는
색다른 느낌을 주고있다.
2001년 9월10일 월미산이 시민에게 귀환된것을 기념하기위하여 귀환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월미산 정상의 모습이다.
정상에는 일제강점기인1908년에 세워졌던 아타고신사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신적인존재로 모시던 황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시설이 신사이다.일본은 식민지로 획득하거나 침탈한지역에 예외없이 신사를 세우고 신을 숭배하였다.
조선에 세운 신사는 주로 한국의 뿌리가 되는곳이나 한국의 정기를 누룰수있는 산봉우리에 세웠었다.
정상 데크 바닥에 새겨진 정상표지석.
작약도와 영종대교쪽의 모습을 정상에서 바라보았다.
정상에서 영종도 하늘도시쪽으로.
월미공원관리소 앞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편도 1,000원 왕복 1,500원씩 노약자를 실어 나른다.
월미돈대와 포대를 복원해 놓았다.
문화의거리 놀이기구앞으로 내려와서.
이민사박물관으로 가는도중에는 인조구장이 만들어져있다.
이민사박물관으로가는 데크길에서.
한국이민사 박물관.
월미도 남서쪽에 월미산을 등지고 조촐하게 위치해있는 한국이민사 박물관은 마치 이민이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이미지처럼
외롭게서있다. 물론 깨끗한 건물외관에 건물내부에 들어서면 그런 어두운 느낌은 주지않치만 그때당시 내나라를 뒤로하고 모든것이 두렵고
낮설은곳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들이 보이는듯하다. 이박물관은 2003년 미주이민 100주년을 맞아 인천시민들과 해외
이민자들이 뜻을 모아 2008년 개관한 이민사를 주제로한 테마박물관이다. 처음 이민을 시작할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민에관한 역사를
수집하고 전시한 공간이다.
우리나라 첫이민은 1902년12월22일날 이루어졌다.서구열강의 이권개입 경쟁으로 임오군란(1882년)갑신정변(1894년)러일전쟁(1904년)등의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그와함께 가뭄이 계속되고 이런와중에 일제는 조선에서 싹과 곡물을 대량으로 반출해가 혼란과 굶주림의 연속이였다.
마침 그때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할 일력이 필요할때였다. 그래서 1902년 121명의 이민단이 배에올라 일본 나카사키항으로 갔고
신체검사에 합격한 102명이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 호눌룰루에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3일 도착을했다한다.
사탕수수밭에서 처음으로 일할 사람들을 구해 이민이 시작되였다한다.
전시물들을.
이민사박물관 전시물들.
이민사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서 로비에서.
월미 문화의 거리는 바다를 메꾸어 전망대도 설치해놓고 거리도 한결 크게 만들어놓았다.
태풍이 몰려온다하니 군함도 인천내항으로 피신을 위해 들어오고있다.
전국사진촬영대회가 있어 카메라든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한모델을두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오랜만에 왔던이 문화의거리도 바닷쪽으로 매립해 더크게 만들어져 있다.
작약도가 건너다보인다.
월미문화거리의 흉물로 남아있는 모노레일의 모습이다.
인천시와 인천교통공사가 853억을 투입해서 인천은하레일 중구 인천역과~월미도를 연결하는 모노레일을 지난 2010년 완공했으나
시험운행도중 바퀴의 부품이 떨어져 나가는등 공증되지않은 전동차로 3년째 운행을 못하고있다.
철거하는대도 200억이상의 시민들의 혈세가 들어건다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흉물로 방치되있다.
중앙광장에 있는 커다란 닺.
항상 붐비는 놀이공원은 흥겹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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