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2021. 01. 27일 낙동정맥 (금정산동문~원효봉)

소담1 2021. 1. 31. 21:21

산행장소 : 부산 금정산(동문-원효봉왕복)

산행일자 : 2021년 1월 27일 수요일

산행인원 : 남편과 둘이서.

산행경로 : 금정산 동문주차장-동문-조망포토죤-제4망루-의상봉-원효봉 왕복.

산행시간 : 10 : 10 ~ 13 : 10 (3시간)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정맥(洛東正脈)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정맥이다. 이 정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 국토의 근골(筋骨)을 이룬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九峰山)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雲住山, 806m)까지 높이 1,000m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월성군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加智山)을 거쳐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며,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난다.낙동정맥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과 낙동강 유역의 내륙을 가르는 분수령 산맥이다. 연결되는 주요 산은 백병산(白屛山, 1,259m)·백령산(白嶺山, 1,004m)·주왕산(周王山, 907m)·주사산(朱砂山)·사룡산(四龍山, 685m)·단석산(斷石山, 829m)·가지산(加智山, 1,240m)·취서산(鷲棲山, 1,059m)·원적산(圓寂山, 812m)·금정산(金井山, 802m) 등이며, 길이는 약 370㎞에 이른다.

 

금정산(金井山)

높이 801m. 부산시의 동래온천 북쪽 4km 되는 곳에 있으며, 일부는 경남 양산군에 속해 있다. 산 위에는 조선 숙종 29년에 쌓은 둘레 18,45km의 산성이 일부 남아 있으며, 양산방면에는 범어사가 있다. 동래방면의 금강공원에서 금정산성까지는 케이블카가 마련되어 있으며,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산을 덮고 있어, 부산 시민의 1일 등산코스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금정산성(金井山城)

부산 금정산성은 부산광역시의 진산 금정산에 있으며 삼국시대때 성곽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대한민국 사적제 215호(1971년2월9일)로 지정된 문화유적이다. 금정산성은 약17km로1.5~3m의 높이의 城壁으로 금정산성은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산성이다.이 성은 일제강점기에 파손되었으나 1970년대에 복원사업을 펼쳐 일부 성곽과 관문과 망루를 복원했으며, 현재는 금정산성 일대를 예전 모습으로 차례차례 복원하고 있다. 이곳에는 동서남북으로 망루와 관문이 각각 4개씩 있다. 금정산성의 경우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는데 그동안 동문, 서문, 남문, 북문으로 불렀으나, 각 문의 이름을 시민투표로 결정했다. 그리해서 관문의 이름을 동문은 '관해문(關海門)', 서문은 '해월문(海月門)', 남문은 '명해문(鳴海門)', 북문은 '세심문(洗心門)'으로 정했다.

 

금정산동문.(金井山城東門)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은 금정산성 동쪽 고갯마루 해발 415m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금정산성 동문은 1703년(숙종 29)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되었다. 1806년(순조 6) 동래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래읍성의 배후 성지로서 금정산성의 경영을 요청하여, 1807년 가을에 금정산성 동문을 완성하였고, 1824년(순조 24)에 수리 축조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정산성 동문이 허물어져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이루어졌다.

                   금정산 동문주차장.

                동문으로 올라가는 입구문.

                  동문 가는길

                  금정산 동문.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주민들이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70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달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동문은 호예식문(虹霓式門)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문루이며 문폭은 300cm, 홍예의 높이는 340cm이다. 동래부사 정현덕(1867 ~ 1824)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의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히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문에서 금정산가는길.

              백양산쪽의 전경.

                 포토죤에서.

                  의상봉이 보인다.

 

                  구서동일대의 전경.

                 의상봉,원효봉,금정산정상이 차례로보인다.

                금정산 정상과 원효봉.

                  금정산정상.

                   낙동강 넘어로 김해공항이 보인다.

                    제4망루앞 공터에서.

                   제4망루에서.

                  해운대 고급아파트단지와 광안대교가 흐리게 보인다.

                해운대 장산과 아파트군 그리고 광안대교.

의상봉(義湘峰)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의 봉우리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봉우리이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가지 금성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龍峰)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용호봉(龍虎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하여 오늘에도 부르고 있다.

                  금정산 의상봉에서.

                  원효봉으로 가는 성곽길.

                 지나온 성곽길.

                  원효봉.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元曉峰)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김유신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 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땅달보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 라고 불렀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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