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2021. 01. 11일 한북정맥 (장명산~견달산)

소담1 2021. 1. 18. 12:18

산행장소 : 한북정맥(장명산,금정굴,고봉산,견달산)

산행일자 : 2021년 1월 11일 월요일

산행인원 : 남편과 둘이서

산행경로 : 장명산-금정굴-고봉산-견달산

 

 

장명산(長命山, 102m)

장명산은 경기 파주시 오도동, 하지석동, 교하동에 걸쳐 있는 한북정맥이 끝나는 마지막 구간의 산으로 높이는 102m이다. 장명산 정상의 동남 방향에 핑고개가 북쪽 방향에 공릉천이 자리잡고 있다. 장명산은 일명 약산(藥山)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 산 주위로 전부 구철초가 자생하고 있어 이를 많이 복용한 주민들의 수명이 연장되었다하여 유래된 것이다

 

고봉산(高峰山, 208m)

고봉산은 고양시 일산, 벽제지역을 대표하는 주산(主山)으로 높이는 해발 208m이다. 일명 테미산 성산(成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봉이란 이름은 고구려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고봉산의 한씨미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오랜 역사와 함께 명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봉산은 일산 지역의 최고봉으로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중심에 있어 이 일대의 중산(中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고봉봉수가 있으나 현재 군사시설지역에 포함되어 일반인의 출입은 자유롭지 못하다. 고봉산은 인근의 황룡산까지 숲길과 산길로 이어져 고봉누리길의 핵심이 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휴식 및 자연학습 운동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견달산(見達山, 현달산, 132m)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32m).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군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고려 공양왕릉(恭讓王陵)이 자리하고있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나 『고양군지』에는“군의 서쪽 20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해 위치정보가 서로 다르다.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등에는 현달산의 동쪽으로 공양왕릉이 표기되어 있으며, 『팔도군현지도』에서는 벽제역의 서남쪽에 현달산을 표기하였다. 본달산·견달산·현달산 등 이 산의 다양한 이름은 견달산(見達山)으로 쓰고, 부르기는 현달산으로 하기로 고양시지명위원회에서 정하였다. 이산의 남쪽으로는 견달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으며, 견달산로, 견달마을길 등의 지명이 사용되고 있다.


새해들어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가는듯 하다. 이제 점점 나이가 들며 10대에서는 세월이 10km로 가고 50대에서는 50km로 지나간다는대 나는 벌써 60이 넘었으니 빨리도 지나갈만하다. 아침 남편은 오늘 할일도 계획도 없다며 한북정맥 시작점이며 끝지점인 장명산부터 4개소의 산을 인증하러 가자고 한다. 장명산서부터 견달산까지 야트막하고 시가지를 지나기는 하지만 거리가 엄청나 빨리걷는 사람들고 6~7시간씩 걸리는대 하니 차를 가지고가 그렇게는 못하고 들머리에서 최단코스로 올랐다 차로 이동해 또 최단거리로 올라간다며 가자고 한다. 대충 집에있는 과일과 떡 커피를 타가지고 출발을 하여 우선 장명산으로 간다. 레미콘회사앞 들머리에 차를 세우고 군대 벙커가 있는길을 따라 20분도 안걸려 장명산 정상에 올라선다. 날씨가 안좋아 조망은 우수하지 않지만 월롱천과 멀리 오두산 통일전망대 그리고 반대쪽으로 심학산을 바라본다.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서있다. 3050아띠산악회에서 기증하여 세운 까만 정상석에는 "장명산 해발102m"가 새겨져 있다. 뒷쪽으로는 한북정맥 종주팀에서 2010.6월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인증하고 옆쪽으로는 국기가 걸려있지 않은 빈 국기봉과 한북정맥을 시작하며 또는 완료하며 치라고 한듯 종이걸려있다. 바로 뒤돌아 내려와 걸린시간은 30분정도인것 같다.

 

다음출발지인 금정굴로 출발을 하여 차로 약25분 정도 걸려 금정굴앞 사거리 SK주유소앞 식당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횡단보도를 건너 금정굴 입구로 다가간다. 여러가지 목각으로된 조형물이 서있고 목책계단을 따라 산길로 들어서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니 역사의 현장 금정굴앞에 도착을 한다. 금정굴의 아픈 역사를 설명한 설명판앞에 선다. 이곳은 고산돌 외 75명을 포함한 153명 이상의 고양지역 주민들이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9일부터 10월 31일 사이에 부역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양경찰서 경찰관에 의해 고양시 소재 금정굴에서 집단총살당하였다.

그 유해가 묻혀있던곳으로 후에 발굴한 굴이 있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한바퀴돌아 내려와 고봉산으로 출발을 한다.

 

고봉산 만경사를 지나 조금더 올라가면 군부대입구 영천사 입간판앞 까지 차가 올라갈수 있다. 이곳역시도 6.25전쟁때 격전지로 국군 유해가 많이 발견된 곳으로 고봉산성에는 그 흔적을 남겨놓은 사진들과 설명판들이 있다. 인증을 하기 위해 장사바위쪽으로 가야한다. 군부대로 조금 올라가다 좌측으로 경고판하나가 서있다 군부대지역으로 관계자 외는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 뒤로 산길이 있다. 그길을 따라 군부대 안테나를 끼고 산허리길을 돌아가면 큰 공터 체육시설이 나온다 그곳에 서있는 고봉산성 설명판이 인증장소이다. 인증하고 체육시설앞쪽 장사바위까지 둘러 뒤돌아나와 고봉산을 돌아보며 유해발굴에서 나온 전시물들 사진도 둘러보고 견달산으로 가기위해 출발을 한다,

 

견달산은 고봉산에서 출발하여 금방도착하는 지척거리에 있다. 견달산 아래로는 얼마전 개통한 서울 문산 고속도로 견달산 터널이 통과를 한다. 입구나 출구(문복동)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서울쪽 터널입구앞에 차를 세우고 완만한 길을 따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소리를 들으며 금방 정상앞에 도착을 한다. 몇개의 체육시설앞을 지나니 문복동방향. 견달산발원지480m,식사동풋살구장920m,견달산정상10m이정표가 서있다. 그리고 곧 좁은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견달산정상 132m"표지목을 위시해 견달산이야기(견달산설명판)과 이동통신 안테나 그리고 측량기준점 그리고 군부대 참호까지 있다. 좁은 정상에 여러가지의 표지가 되있다. 인증하고 금방 차로 내려와 불과 2시간만에 4곳을 인증하고 고속도로에 올라 집으로 향하며 한북정맥길 일부를 편하게 다녀왔다.

 

                장명산 오르는입구.

              군 벙커.

               정상으로 올라가는길.

             뒤돌아본 공릉천.

           한북정맥 시작점이며 종점인 장명산.

           한북정맥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

               멀리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보인다.

한북정맥 최종지인 장명산 자락은 잘려 나가고 봉우리 하나만 달랑있었다.주위에는 온통 먼지투성이와 기계의 굉음은 대단했다.장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잘라내고 건축물 폐자재처리장과 레미콘회사 설치했기 때문이다.

               장명산 정상부.

                금정굴입구.

               금정굴 입구에서.

               금정굴입구.

고산돌 외 75명을 포함한 153명 이상의 고양지역 주민들이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9일부터 10월 31일 사이에 부역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양경찰서 경찰관에 의해 고양시 소재 금정굴에서 집단총살당하였다.

위 사건의 경위를 보면, 국군의 고양 · 파주 지역 수복 이후, 경찰은 지역주민 중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한 혐의가 있는 자와 부역혐으로 행불 또는 도피한 자의 가족을 연행하였다. 경찰은 이들을 관내 각 지서 및 치안대 사무실, 창고 등에 구금하였다가 고양경찰서로 이송한 다음, 3~7일간의 조사를 거쳐 10월 9일부터 한 번에 20~40여 명씩 금정굴로 끌고가서 총살하고 암매장하였다. 이 과정에 고양경찰서 관내 경찰과 20여 명의 태극단 · 치안대 등 경찰보조 인력이 가담하였다. 금정굴 현장에서는 5인 1조의 경찰관 2개조가 희생자 5명씩을 굴 방향으로 무릎을 꿇게 하고 등 뒤에서 사격하여 살해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본 사건은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들을 불법으로 집단 총살한 사건이었다. 비록 사건 관련 희생자들 가운데 일부가 부역혐의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 총살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사건 이후에도 일부 희생자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생계의 터전인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다. 또한 연좌제에 따라 취업의 권리가 제한되고, 요시찰인으로 분류되어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위원회는 호적 정정조치를 비롯하여 금정굴사건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사과, 임시 보관 중인 유해 영구봉안, 평화공원 설립과 위령시설 설치, 전시하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등 관련 법률 정비, 잘못된 기록의 수정 및 진실의 역사반영, 역사관 건립을 권고한다.

 

                   금정굴내부.

                  고봉산 군부대입구.

              정상 안테나.

고봉산 정상에서 동쪽, 진밭마을 방향에 있는 큰 바위의 이름이다. 고봉산 누리길에 속한 구간이고 주민들의 산책로가 주변에 조성되어 많은 주민이 오르내리는 바위로 고봉산의 명소 중 한 곳이다. 이곳의 바위는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예전 힘이 센 장사가 바위를 두 개로 쪼개어 장사바위라 부른다. 또 달리 장사가 이곳에 자주 올라와 바위를 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별명으로 벼락 바위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두 개로 쪼개어 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사바위앞.

             견달산 아래로 서울 문산 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간다.

             정상아래 이정표.

                 견달산 정상목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