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장소 : 송월동 동화마을,차이나타운,자유공원.
트레킹일자 :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트레킹인원 : 남편과 둘이서.
트레킹경로 : 인천역-송월동동화마을-차이나타운-자유공원-동인천역
트레킹시간 : 11 : 00 ~ 13 : 00 (2시간)
송월동 동화마을.
인천광역시 중구 동화마을길38(송월동3가)일대에 있는 동화를 주제로 한 마을이다. 낡고 오래되어보이는 달동네 지역을 중심으로 동화풍의 벽화와 조형물 등으로 꾸며진 동화마을이며 근처에 차이나타운과 접해있다. 이 곳에는 인구감소로 인해서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연로해진 원주민들만이 남아있고 공가(空家)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그리 특색이 없었던 곳이었다.이에 인천시가 송월동 달동네를 관광명소로 재탄생하기 위한 일원으로 주거환경을 대폭 개선하여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화풍의 거리를 만들게 되었고 주택가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과 배경으로 꾸며진 동화마을로 부흥하게 되었다.주택가 골목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배경과 주인공들이 그려져있으며 한국 전래동화를 비롯하여 세계명작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려진 벽화와 조형물을 만날 수 있으며 아이들에게는 동화를 통한 동심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어린시절 동화를 보았던 추억을 만끽하게 해주고 있다.원래 인천의 오래된 달동네였던 곳을 재정비하여 한국 전래동화를 비롯해 세계명작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배경으로 소재로 꾸며졌다. 송월동은 소나무가 많아 솔골 또는 송산으로 불리다가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달이 운치가 있어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후에는 독일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부촌을 형성하였으나, 수십 년 전부터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마을에는 연로하신 분들이 살다 보니 활기를 잃고 침체되었으며, 빈집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꽃길을 만들고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담벼락에 색칠을 하여 동화마을로 변화하였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의 치외법권(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가 중국 음식점이다. 현재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은 초기 정착민들의 2세나 3세들이어서 1세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중국인들이 살게 된 지도 100년이 넘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색깔을 간직해오고 있다. 특히 양과 맛이 뛰어난 중국 음식은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불러들이고 있다. 1884년 인천에 청국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 상인과 노동자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들에게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이 짜장면이다. 산둥 지방의 토속면장에 고기를 볶아 손수레에 재료를 싣고 부둣가로 나가 직접 수타면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화교들이 캐러멜을 첨가한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짜장면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인천 차이나타운에는 먹을거리만 있는 게 아니다. 개항 관련 자료 및 개화기 생활용품 등을 볼 수 있는 인천 근대박물관과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타일로 제작하여 장식한 삼국지 벽화거리, 중국에 가보지 않고서도 다양한 중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한중문화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대부분 무료로 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주머니 부담을 덜어준다.
인천 자유공원(만국공원)
인천 자유공원(仁川自由公園)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며, 인천역과 차이나타운이 가까이 있다. 응봉산 전역을 아우르며 정상에는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과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인천을 대표하는 공원 중 하나이다. 1889년 무렵, 우크라이나인 토목기사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인천 소재 외국인 거류지의 거주자들을 위한 공원으로서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설되었다. 한국 최초의 대형 공공 시설로서 개설 당시부터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공원(西公園)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에는 원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불렸다. 1957년 김정렬 인천시장이 취임하면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1957년에 인천 상륙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동상을 공원 동편에 건립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으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시위를 한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의 의장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1] 맥아더 동상 인근의 광장은 인천 시가지, 인천항과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일몰 석양을 잘 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알맞다.정상엔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이 있다. 1882년 4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조인된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이 되는1982년에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도 그 옆에 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7주년이 되는 1957년 9월 15일에 완공됐다. 자유공원 정상에서는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자유공원 안에는 소규모 동물원과 팔각정, 연오정, 의자 등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맥아더 동상이 있어 자녀와 함께 온다면 교육적으로도 좋다.
토로나19로 인하여 일자리도 줄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아우성이다.내가 하는일도 일이 많이 줄어 오늘은 집에 있어야 한다. 아침식사후 남편에게 나 오늘 한가한대 하니 일찍 말했으면 산에나 다녀오는대 차이나타운에 가서 자장면 점심이나 먹고 올까 하며 준비하고 나선다. 집앞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네정거장 인천역에서 하차를 하여 송월동 동화마을로 올라간다. 동화마을 아치문을 들어서니 몇번 왔었으나 색도 바래고 크게 변함이 없었는대 그림이 새로더 추가되고 산뜻하게 색을 칠하여 잘 단장이 되있다. 단지 작품과 조형물 그림앞에 주민들의 차인지 관광객들이 타고온 차인지 사진 찍는대 방해를 하며 주차되 있는것이 아쉽기는 하다. 신선하게 한바퀴 돌아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간다. 이곳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듯 몇몇 상점은 수리중이고 한가하다. 삼국지거리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간다. 가을 단풍이 물든 공원을 걸어 한미 백주년 탑도 지나고 공원광장에서 인천항과 인천대교 그리고 월미도를 내려다 보고 맥아더 장군을 만나가 위해 동상앞으로 다가가 인사하고 인천시민 헌장탑도 돌아보고 홍예문으로 내려온다. 남편은 학창시절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자주 올라왔던 추억의 길이라며 지난 추억에 잠긴 모습니다. 동인천역으로 내려와 한때는 인천에서 제일로 번화했던 동인천역에서 답동으로 넘어가는 경동고갯길은 한가하게 지나는 차량뿐 옛 영화는 찾아볼수가 없다며 쓸쓸한 모습을 지으며 동인천역사로 들어가 집으로 돌아오며 가을 추억을 찾아 인천역에서 동인천역까지 걷고 집으로 돌아온다.
전철타고 인천역에 도착.
인천역앞 차이나타운 입구문.
송월동 동아마을 입구 아치문.
벽화앞.
동화마을 조형물.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음식점.
월병.
공갈빵
화덕만두집 조형물.
삼국지 벽화거리
자유공원에 올라서.
월미도.
바다건너.영종신도시
한미수교 100주년탑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동상쪽.
맥아더장군 동상앞
인천시민 헌장비앞.
맥아더 장군의 동상.
홍예문과 자유공원 입간판.
홍예문.
동인천역.